많은 사람이 어려서부터 주변사람들로부터 배려와 돌봄을 필요로 한다. 부모, 가족, 친구, 애인, 자녀, 동료로부터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자신이 원하는 배려나 돌봄을 받지 못했음을 뜻한다. 공자, 노자, 부처는 기대감과 집착을 버리라고 권하지만,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인 본성은 기대감을 지우기 어렵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도 모태 속에서 엄마의 자양분을 공급받아서 생존했고, 태어난 이후에도 상당기간 부모의 돌봄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성장을 하면서 1차적인 돌봄의 제공자였던 부모가 대신 주변의 가족, 동료, 친구로 교체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돌봄을 친구나 동료, 배우자에게서는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 이외의 인간관계는 보통 어떤 상호적인 관계에서 형성되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관계가 아니다. 원래 남이었던 친구나 애인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부모의 일방적인 돌봄과 배려에 뼛속 깊이 익숙한 사람들은 타인 출신의 친구, 아내, 남편, 애인에게 부모와 같은 수준의 일방적인 관심과 배려를 원한다.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꼴이다. 오히려 어려서 친부모로부터 돌봄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혼자 성장한 사람이 역설적이지만 성장해서 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기대감이 적다. 그러나 이들은 상호적인 인간관계에서 상대가 자신이 베푼 호의에 대해 같은 대응을 안 하면 상당한 수준의 배신감을 느낀다. 무조건적이거나 일방적인 돌봄과 배려는 기대하지 않지만, 자신이 먼저 베푼 배려를 상대가 무시하면 참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라도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면, 조만간 그에 대한 답례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절대자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세상을 살다 보면, 점점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나의 기대감을 채울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100% 성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이타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호의에 대해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남이 먼저 나를 이해해 주고, 나를 배려해 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우리는 보통 절대자를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주는 존재로 여긴다. 사람들과의 상호적인 관계에서 자주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태아시절 부모에게 받은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돌봄과 배려를 해주는 존재를 그리워하게 된다. 물론 모든 종교에는 의식이나 스토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같은 사람에게서는 채울 수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 돌봄, 배려, 관심, 이해를 해주는 존재로서 절대자를 필요로 한다. 만약 절대자가 없다면,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서 지칠 대로 지친 사람의 마음이 위로를 받을 곳이 어디에도 없게 된다. 단지 상상일 뿐이지만, 부모, 주변의 모든 지인들로부터 언제나 완전한 배려와 돌봄을 받는 사람도 별도로 절대자가 필요한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