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보이지 않지만, 신적인 힘의 임재를 늘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통 사람들도 살면서 한두 번은 소위 기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신비한 순간들을 경험한다. 특히 극적으로 교통사고를 피하거나, 매우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경우들이 있다. 우리는 기성 종교의 신을 믿건, 안 믿건 상관없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갈망하고 믿으며 산다. 왜냐하면 갑자기 심장이 멎거나 1분 이상만 호흡을 안 하면 생명이 중단되기에,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은 그분의 임재 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분의 힘이 우리의 생명을 붙잡고 있기에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1인 우주선을 타고 광대한 은하계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다. 우주여행 중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지만, 그때마다 모든 것을 희생할 수는 없다. 비록 우주선의 한 곳이 일그러져도 차갑게 뚫고 나간다.
우리는 앞으로만 나아가게 설계되어 있다. 우리 몸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의 생각은 수시로 과거를 방문한다. 몸이 함께 가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란 현실감이 없는 막연한 세계이다. 그럼에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처럼 현재의 우리를 끌어당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계속해서 받쳐주고 있는 그분의 임재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만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분의 임재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집중할 때 힘으로 변한다. 사람의 마음이 지금을 떠나서 과거나 미래라는 비현재를 방문하면, 바둑 두는 사람이 사라지고 현재의 우주선이 방향을 잃고 운석에 부딪힐 수 있다. 나의 우주선을 운전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신의 임재 속에서 발현하는 인생에게 협조할 것인지, 아니면 불평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하기로 마음먹으면, 더 이상 남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게 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주어진 일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면 된다. 주변 사람에게 기대를 안 하면, 서운한 감정이나 답답함이 아예 생기지 않는다. 또한 타인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줄 일도 없어진다. 내가 지구라면, 타인은 달이다. 언제나 옆에 있지만, 서로의 궤도는 다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나와는 성장배경이나 경험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주변의 사람들은 공존과 협조의 관계이지, 서로 합쳐지는 융합의 대상은 아니다. 주변 사람이 나와 같은 병을 가지고 있지 않고, 같은 날 함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한편,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이든 공짜로 얻으려 하면 안 된다. 사랑의 판단에도 은연중 돈이 작용하는 현실이다. 모든 공짜에는 보이지 않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말하였듯이, 나의 아픔, 고통, 문제 등 자신의 정보를 주변 타인에게 함부로 알려 주면 안 된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의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타인의 정보를 가공하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에게 불리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머슨이 강조한 바대로, 어떤 시기에 형성된,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만병통치약처럼 따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섭게 변한다. 우리의 고정된 가치관을 시대와 환경에 어울리게 늘 개선하고, 필요하다면 수정도 해야 한다.
또한 인생의 카펫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라는 두 가지 실로 짜여있다. 모든 일에는 양극성이 포함되어 있다. 울다가 웃을 수도 있다. 화가 나도 배는 고프다. 사랑하지만, 미워한다. 이 점을 깊이 받아들이면, 세상 살기가 수월해진다. 어떤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연단시키고, 나중에는 축복으로도 여겨질 수 있다. 반대로 지금 눈앞의 좋은 일도 미래 불행의 씨를 담고 있을 수 있다. 비가 오고 폭풍이 몰아쳐오기도 하고, 포근한 양광의 날씨가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사의 변화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지금 미국 대통령 당선을 둘러싸고 많은 전망들이 난무하지만, 4년 후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나고새로운 역사가 다가올 것이다. 4년 후의 세계에서 바라다본 오늘은 몸은 갈 수 없는 과거일 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몽테뉴가 말한 대로, 늘 지금 세상을 떠나는 느낌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겪게 될지도 모를 미래의 모든 고통과 번민의 순간들은 이미 과거 속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