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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pr 03. 2021

내가 타는 인도 버스가 어디로 가는진 알 순 없지만

Where are you going?

리시케쉬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 나는 내일이면 찬디가르로, 유카는 히말라야 산속 강고트리로 떠난다. 열흘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인생이라는 책 속에서 언제나 떠올리고 기억하고 싶어 접어 놓은 페이지처럼 하루하루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처음 나를  곳으로 안내해준 유카와 아시시와 작별 인사.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날, 해가 저물어 어두워지는 다리 옆에서 지나가는 그들과 만나지 않았다면 리시케쉬에서의 경험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원래 가격보다 무려 10배나 사기를 치고 나를 외딴 숙소에 떨어뜨려 결국 길 위에서 우연히 유카를 만나게 해준 릭샤 아저씨에게도 감사드린다.


인도에서의 인연을 기념 삼아  손을 모아 나마스테하는 모습으로 사진도 찍었지만 헤어짐에 아쉬운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인 거지... 눈물이 계속 흐르는 유카에 비해 나는  이리 태연한 건지...


"유카야. 우리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의 무언가 통하는 게 세상엔 있다는 걸 알잖아. 확실한 이유는 없지만 왠지 너랑은 또 만날 것 같아. 우리 또 만날 거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 너무너무 많이 많이 고마워. 우리 또 만나자"


이렇게 열흘 동안의 리시케쉬 여행이 끝났다. 리시케쉬를 떠나기 전, 몇 번이나 신경 써서 계산했다. 리시케쉬에서 찬디가르는 어떻게 갈까? 얼마나 걸릴까? 델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가이드북에 나온 도시 간 버스 시간들을 비교해보며 얼추 시간을 맞춰봐야 했다. 평균 버스 시간 더하기 그만큼 연체될 수도 있는 시간까지 고려해보니 거의 12시간이 나왔다.


밤에 도착하는 것보단 차라리 아침에 도착하는 것이 나으니까 늦은 오후, 6시에 리시케쉬를 떠나면 다음날 아침 6시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나름 계획해두고 나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데 리시케쉬에서 찬디가르행 버스가 하루에   정도 있다고 던 것과는 달리 막상 터미널에서 물어보니  잘라 찬디가르행 버스는 없다고 . 매번 그랬듯이 마음대로  되는 상상초월 인도 버스 여행이 이제  시작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예상치도 못하게 근처의 가장  터미널 하드리와르로 향했다. 복작복작한 시골 5일장처럼 넓은 공터에  십여 대의 로컬버스와 릭샤가 버티고 있었다.   명의 어벙벙한 외국인 손님이 내리자마자  때같이 몰려오는 릭샤꾼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어디 가요?" 다시 나는 정신 똑바로 모드로 변신한다. 여기선 마냥 그들을 내쳐서 좋을 것이 없다. 오히려 현지인이면서 매일 같이 터미널을 지키는 분들이니 이보다  좋은 정보를 가진 선생님도 없을 거다. 간절한 눈빛으로 족히 8명은 넘게 서있는 릭샤꾼들에게 물었다.


"제가요. 찬디가르를 가야 하는데요. 버스를 어디서 타면 될까요?"


"여기서 엄청 가까워요. 내가 태워다 줄 수 있어요."라고 대놓고 거짓말하는 사람부터 릭샤로는 움직일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을 안 사람들은 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렇게 막무가내인 릭샤꾼들을 떠나보낼 수도 있구나.'


아무튼. 그렇게 남은 2,3 분의 친절한 릭샤꾼 아저씨들이 몇몇 정보를 알려주신다.


"여기 터미널에 가는 버스가 있을 거예요. 저어기 아래쪽으로 가보세요."


"아니야. 저기 뒤쪽으로 가세요."


"아니야. 저기 왼쪽일 거야."



갑자기 아저씨들끼리 논쟁이 붙었다. 나는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 그래도 여기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신 아저씨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마음을 비우고 혼자서 버스 주변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버스 주변에 자리 깔고 누운 현지인들부터 버스 창밖으로 신기하게 쳐다보는 귀여운 아이들까지 "찬디가르?"를 연발하며 물어보는데 갑자기 차 안의 어린아이 한 명이 함박웃음을 고개를 끄덕인다.


"찬디가르? 이거 찬디가르 가는 거야?"


꼬마가 재밌다는 듯 말해준다.

"응. 이 버스 찬디가르 가요."


"야호. 그럼 나 이 버스 타도 되는 거야?"

좋아하는 모습에 아이도 들떴다.


"잘 모르겠는데 자리가 있긴 해요. 표를 사야 해요."


"표는 차 안에서 사는 거 아니야??"


델리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표는 차내에서 구매한다. 아... 뭘까.. 아이라서 잘 모르는 걸까... 주변에 앉아있는 현지인에게 혹시 매표소가 있는지 물었다. 손가락으로 저 멀리 작은 부스를 가리키는 아저씨. 여기는 정말 매표소가 있는 걸까... 뒤에서 꼬마가 다시 부른다.


"누나. 방금 빈자리 하나 남은 것도 다 찼어요. 이 버스는 곧 떠날 거예요."

아쉽다... 이 꼬마랑 버스 타면 좋았을 텐데...


"괜찮아요. 금방 또 버스가 올 거예요. 얼른 표부터 사요."


정말 고맙다. 버스는 정말 바로 떠났고 나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매표소인  같은 컨테이너 박스 . 현지인들이 줄을 길게 서있고 뭔지는 모르지만 멀뚱멀뚱 서서 나도 따라 줄을 서본다. 아직도 긴가민가 어리둥절 두리번거리는데 의심 많은 눈초리에 터미널에 와서 처음  외국인이 눈에 띈다. 줄이 짧아져 그녀와 가까워지길 기다리다가 드디어 말을 건넸다.


"혹시 여기가 정말 매표소 맞나요? 델리에선 차내에서 샀었는데. 혹시 사기당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는 그녀.


"걱정 말아요. 차내에서 표를 사는 경우도 있지만 매표소에서 사야지만 탈 수 있는 경우도 있어요."


한시름 마음을 놓고 매표소 앞에 선다. 확인 도장을 꾹 찍어주고 시원스럽게 종이 표를 찢어주는 매표원 아저씨에게 커다란 함박웃음과 큰 소리로 두 손 모아 '단야밧'이라고 말하고 나왔다. 아직 삼십여분은 남은 시간, 자연스레 외국인 친구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그녀. 사해바다의 에메랄드 색깔이 눈동자에 담긴 것 같다. 이스라엘에 가봤다고 하자 반가워하는 눈치. 혹시 그럼 군대에 다녀왔냐는 질문에 마침 제대하고 바로 인도 여행 중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관계. 군대를 제대하고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직접 총을 잡고 눈 앞에서 대립하는 긴장된 현장에서 군인으로서의 경험은 젊은이들에게 분명 많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만들 것이다. 여행이 그녀에게 좋은 길로 인도해주길... 나와는 아주 상관없는 일인 듯하다가 아직도 분단된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리니 전혀 남의 이야기 같지도 않은 느낌...


서로의 여행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 주며 나는 조금 전 꼬마 아이를 만났던 그곳에서 찬디가르행 새로운 버스를 탔다. 델리에서 버스를 탔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와는 정반대로 좌석을 잡았다. 창가 쪽은 절대로 앉지 않고 무조건 통로 쪽 맨 앞자리. 운전석과 보조석 한가운데, 바로 뒷자리에서 뻥 뚫린 앞유리로 바람처럼 스쳐가는 다른 차들과 나무, 사람들.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도 버스를 탄다면 굳이 놀이동산에 가지 않더라도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스릴 있는 롤러코스트를 타는 느낌이 들 거라고. 무서워도 살기 위해선

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스릴도 세 시간이 넘게 이어지면 지루함으로 변하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점차 어두움이 버스 밖 모든 세상을 감싸고 나도 모르게 지루한 스릴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다. 몇몇 작고 큰 터미널에 들러 예전 사람들은 내려주고 새로운 사람들을 태워주긴 했지만 인도에선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을 뿐 중간중간 멈추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나는 더욱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무슨 일인지 몰라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옆에는 검표원 아저씨가 서계신다. 대체 왜 하필이면 이 캄캄한 밤에 검표를 하는 걸까.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아까 매표소에 산 표를 찾아 아저씨에게 당당히 드리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아저씨가 다시 나를 깨운다.


"표주세요."

"방금 드렸잖아요."

"다른 표 주세요."

"예? 왜요?"

"어디 가시는데요?"

"찬디가르요."

"찬디가르는 아까 지나갔으니까요."

"예?? 지나갔다구요??"

"바로 전에 멈췄던 터미널이 찬디가르예요."

"정말요??? 진짜요???"


그럴 리가 없는데. 이렇게 빨리 도착 할리가 없는데. 갑작스러운 검표원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럼 여기가 어디예요? 이 버스 찬디가르 가는 버스 아니에요?"

"여기도 찬디가르예요. 찬디가르에 가는 건 맞는데 쉼라까지 가는 버스예요."


도대체 찬디가르는 지났는데 여기도 찬디가르란 말은 무슨 뜻인가. 불과 6시간 전만 해도 나는 유카와 게스트 하우스 친구들과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어둡고 황량한 곳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길을 잃을 거라곤 그땐 생각도 못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옆에 앉으신 아저씨 한 분이 차근차근 다시 묻는다.


"아가씨 어디로 가는 거예요?"


리시케쉬를 떠날 때부터 버스를 타고 지금까지 줄곳 머릿속에서는 한 생각, 찬디가르를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기에 내 대답은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찬디가르요..."

"그럼 그나마 여기서라도 우선 내려야겠네요. 기사님. 금방 내려서 릭샤라도 잡아주고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줘요."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정신은 비몽사몽 한데 심장은 덜컥 내려앉아서 어떻게 배낭을 매 들고 짐은 제대로 챙겨서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게 이런 걸까? 아기 해리를 안고 두들리 가족에게 전해주기 위해 덤불 도어 교수님이 찾아간 프리벳가 4번지의 밤거리처럼 고요함만큼 무거운 어둠만이 거리를 채우고 그 안에 나랑 아저씨가 덩그러니 서있다. 어둠 속에 유일하게 빛나는 버스 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데 얼른 나도 어딘가로 가야 하는데... 예상도 못했던 상황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저씨가 다시 물으셨다.


"어디 가려고 버스 탄 거예요?"

"찬디가르요..."


정말 다른 말을 하고 싶은데 정말 찬디가르를 가려고 한 생각뿐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 침착하게 아저씨가 다시 물었다.


"찬디가르 버스 터미널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미 지났는데 만약에 그냥 찬디가르를 말하는 거라면 지금 여기도 찬디가르긴 해요. 그래도 찬디가르에 가려고 했으면 어딜 가려고 했다거나 머무르려고 한 곳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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