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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pr 04. 2021

인도에서 티베트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

티베트 망명 정부가 세워진 산골 마을, 다람살라와 맥그로드 간즈



어둠을 뚫고 열심히 달려가는 로컬버스. 서서히 날이 개이고 실눈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붓길처럼 자연스레 늘어진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더 높고 더 깊은 산골 속으로 버스는 빨려 들어간다.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명 6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찬디가르에 갈 예정이었는데. 어젯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가 한국인지 인도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겠다.


먼지와 기름때가 묵직이 내려앉은 90도 직각의 나무의자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본다. 저기 멀었던 산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하나 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가 어딜까 고개를 쭉 빼고는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옆자리의 아저씨가 나를 똑똑 건드리신다.


"이제 곧 캉그라라는 곳에 내릴 거예요. 아가씨도 여기서 내려서 왼쪽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버스 정류장이 나올 건데 거기서 다람살라 가는 버스를 타면 돼요."


이윽고 정말 어느 시골 터미널에 멈춘 버스. 내가 다음 버스정류장까지 잘 찾아가는지 아저씨는 어젯밤처럼 버스에서 내려 내 뒷자리를 지켜주셨다.


"감사해요~~ 진짜로~~!!"


인도 자체도 낯설지만, 계획에 전혀 없던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지금 이곳에 홀로 남겨진 순간부터, 나는 부질없는 것에 마음을 두기보다 무엇이 진짜 중요하고 정말 해야 하는 것인지 초점, 중심을 맞춰야 한다고 되뇌었다. 이번 여행의 중심은 바로 힐링이었다. 힌두교의 성지에서 티베트 불교의 성지로 향하는 여행 중 힐링이라는 초심에서 벗어나려 했기에, 지금 나는 생뚱맞게 인도의 수많은 동네 중에서도 생전 처음 들어본 '캉그라'라는 곳에 멀뚱이 혼자 서있게 된 것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분주한 버스정류장과 시장 골목을 지나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저씨가 알려주신 대로 왼쪽 길로만 쭉 따라가다 보니 정말 버스 정류장 하나가 보였다. 여러 대의 버스가 서있는데 과연 다람살라로 가는 버스는 뭘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버스터미널의 모습을 바라봤다. 버스에 적힌 글자들도 보고 버스에 차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본다. 그렇게 가만히 침착하게 주변을 관찰을 하고 나니 대충 어떤 버스가 다람살라로 갈지 예측할 수 있었다.


빨갛고 파랗고 하얀 알록달록한 수공예 장식이 잔뜩 꾸며진 버스. 신기하게도 그 버스에는 커피색의 진한 쌍꺼풀과 눈썹을 가진 인도 사람들보다는 어찌 보면 정말 나랑 많이 닮은 눈 모양과 피부색을 갖은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이 버스가 티베트 사람들의 마을로 가는 버스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람살라 가는 버스 맞나요?"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묻자 하나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따로 매표소가 없어 버스 승무원에게 표를 끊고 나도 버스에 탔다. 강원도의 대관령을 넘어가듯 구비구비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다람살라행 버스. 아직도 산꼭대기는 한참 남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두 내린다.


사람들에 휩쓸려 90도로 꺾인 산 중턱 도로에 다시 덩그러니 서있는 나. 멀뚱멀뚱. 도대체 여기는 어딘지 다람살라는 크다고 들었는데 왜 이리 아무것도 없는지...

그렇게 멍하니 십여분을 서있는데 버스 한 대가 눈 앞에서 멈췄고, 갑자기 펼쳐지는 낯선 곳에서의 낯익은 풍경 하나가 펼쳐졌다. 마치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출퇴근 지하철처럼 이미 하나 가득 차있는 버스에 환승하듯 분주하게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구겨 넣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 물결에 실려 타게 된 세 번째 버스.

다시 산 중턱의 다람살라에서 산꼭대기 마을 맥그로드 간즈로 향하는 버스 안. 주변을 둘러봤다. 하나 가득 인도인과 티베트 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또 까만 머리의 동양인 두 명이 눈에 띈다. 또래 정도로 보이는 동양인 남녀 두 명은 좌석에 앉아 있었고, 나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초점 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그들과 눈이 맞았다.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버스가 가끔씩 멈추면 사람들이 하나 둘 내렸고. 드디어 나는 자연스레 그 두 명의 동양인 앞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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