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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pr 07. 2021

왜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야 자유로울까

여행의 끝자락에서 여행의 첫 조각을 떠올려보다

해발 2975m. 맥그로드 간즈에 있는 설산. 트리운드. 눈 앞에 히말라야 설산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알프스 하이디처럼 푸른 풀밭이 카펫처럼 깔려있고, 그 아래 알록달록 텐트가 몇 가지 놓이고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뜨는 곳. 5월의 인도는 남쪽 지역의 사람들에겐 참을 수 없는 더위를 가져다주지만, 북쪽 지역의 사람들에겐, 특히 여행자들에겐 겨울과 봄 내내 막혀 있던 고산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드디어 허락하는 계절이었다.  


트리운드에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난 친구들.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가지 않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트리운드는 물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도 산님이 받아주시기만 한다면야 여기까지 온 이상 마다하지 않고 그 품 속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두 달도 채 안되었고, 언제 또 아프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인도에서 지낸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니 체력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서 사진 속 트리운드의 드넓은 설산 대신 베란다로 나가 보이는 설산과 마주한다. 가만히 앉아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몇 차례 반복하고 다시 눈을 뜨곤 산을 보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그리고 문득 인도에 오기 전, 평소에 좋아하던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언니는 아직 몸도 다 회복하지 않은 내가 굳이 인도를 간다는 것이 불안해 보인 듯했다.


“왜 굳이 히말라야에 가야 하는 거야? 조금 편한 여행 하거나, 아님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몸 좀 나으면 가면 안 되겠니?”


아직 어릴 적 고집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머리가 아직 덜 나은 건지 그때 나는 도통 히말라야에 가겠다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언니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듯 문득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히말라야 트레킹 했었는데. 대학 마치고 인도 갔다가 나는 네팔 쪽으로 갔었어. 여행은 따로 하고 트레킹 하는 곳에서 한국 분들 4명이랑 같이 히말라야 등반을 했지. 우리는 5박 6일 코스였어. 산 정상에 올랐을 땐 기분이 너무 좋더라 정말. 하얀 설산을, 그것도 히말라야에 올라서 본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잖아.


트레킹을 했다는 것도 뿌듯하고 그게 어쨌든 히말라야라는 것도 특별해서 나름 뿌듯해하고 있는데 그때 옆에 같이 있던 사람들 얼굴들이 보이더라고.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이 다들 정말 행복해 보였어. 자유롭다고, 정말 숨 쉴 수 있다고 속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은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왜 우리는 어딘가를 나와야지만,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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