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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pr 06. 2021

히키코모리는 말로만 들어봤는데

반하고 짝하는 그 사이의 우리

어젯밤, 마사가 부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에 나와서 우리 서로 인사하자. 넌 너희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를 찍고 나는 우리 집에서 너를 찍어줄게."


원래 나는 사진 찍기를 정말 싫어했다. 그런데 남아공을 다녀온 뒤, 친구가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빼곤 정말 그때의 모습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사진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정말 시간이 지나고 사진이 없으니 그때의 기억조차 모두 사라진 느낌이었다.


먹는 것, 화장품 산 것, 교통수단. 예전 같으면 사소한 거 하나하나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왜 저리 귀찮게 모든 걸 찍는 걸까 처음에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을 이제는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런 제안은 또 처음이었다.


사진 찍어달라는 별의별 부탁은 많이 받아봤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서로 사진 찍어주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도 Why not? 이런 것도 신기하고 기억에 남을 여행의 추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흔쾌히 친구에게 물었다.


"아침 몇 시에?"


변덕스러운 맥그로드 간즈 날씨. 그래도 오늘 아침 햇살은 눈이 부실만큼 예쁘다. 충분히 기분 좋게 일어날 시간, 아침 8시. 마사와 베란다 인사를 하기 위해 창밖으로 나온다.


"굿모닝, 써니~~~"

"굿모닝, 마사~~~"


흔쾌히 사진을 찍자고 동의하긴 했지만 도대체 이렇게까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한편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둘이 아무 말이 없어도 햇살 같은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보니 가끔씩 친구들과 시도해보면 좋은 사진 찍기다. 게다가 우리는 의도치 않게 우리의 웃음을 이웃과 나누기까지 했다.






웃음은 전해진다. 나는 건너편 건물의 마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는데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마침 위층에서 햇살을 즐기던 마사의 이웃들이 갑자기 나에게 손을 크게 저으며 인사를 한다. 나중에 보니 마사네 이웃만 그런 게 아니라, 마사가 나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내 아래층에 머물던 여행자도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줄 알고 함께 인사를 한 사진이 찍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모두 다시 한번 배를 잡고 웃었다. 정말 생뚱맞았지만 마사의 아침인사 아이디어는, 결국 4명의 이웃사람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했다.


5월, 인도의 날씨는 저 밑 남쪽 지역은 돋보기로 태양을 쬐는 듯한 무더위가 하루 종일 기승이겠지만,

여기 북쪽 맥그로드 간즈의 날씨는 하루에도 4, 5번은 바뀐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 레스토랑에서 닭다리 하나를 뜯어먹는 짧은 순간에도 전등 빛이 수십 번 반짝이다 꺼지더니 결국 레스토랑 주인님이 촛불 하나를 테이블 가운데 놓아주신다. 언제나 더울 것만 같던 인도의 여름이었지만 갑자기 저 멀리 설산에서부터 시컴한 구름이 몰려왔고, 비 오는 날 날궂이 하듯 우리는 메아리치는 천둥소리를 따라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바깥 구경은 틀렸고 오랜만에 셋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생각해보니 버스에서 만난 처음부터 친해져서 함께 다니기는 했는데 어떻게 맥간에 왔는지, 여행은 왜 하는지 아직 서로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과자 한 봉지, 망고 주스 한 페트병. 일본에서 온 청년, 한국에서 온 청년,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마사는 일본에선 무슨 일 해?"

"나는 바텐더야."

"우와 옆에 있으면서도 상상도 못 했어.

술 엄청 잘 마시겠다."

"술도 좋고 망고 주스도 좋고"


자기 이름과 똑같은 망고 주스를 들며 환히 웃는 마사. 며칠 동안 함께 있었지만 매번 마시는 거라곤 달달한 과일주스와 짜이뿐이라 그녀가 바텐더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일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은 올 수 있는 거야?"

"일 년에 두 달 정도는 휴가를 낼 수 있어. 작년에 쓰지 않은 휴가까지 해서 3달 정도 인도 여행 중이야."

"우와. 그게 가능해. 그래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거야? 진짜 좋다."


일본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일을 많이 하는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다 그런 것만도 아닌가 보다. 한국에선 무슨 일이든 일을 시작하면 길어야 일주일 정도? 휴가를 쓸 수 있을까. 더 오래 쓰고 싶어도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여행을 떠나가는 직장인들의 아쉬움을 한 두 번 들어본 것이 아니었는데...


"그럼 바텐더 전에는 무슨 일했어? 대학생이었을까 그땐?"

"음.. 그걸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하지. 일본 말인데. 그냥 한동안 내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살았어. 일본어로는 히키코모리라고 하는데 혹시 들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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