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시간의 세계여행
아직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몇 시간이 남았지만 홍콩 면세점도 패스다. 나에겐 아시아나 스튜디어스 언니가 내 손에 꼭 쥐어준 6개의 튜브 고추장이 있었으니까. 인천인지 홍콩인지, 늦은 밤 공항 안에만 있으니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작은 의자에 앉아 꾸벅거리다 어느새 탑승시간이 되었다.
요하네스버그행 케세이퍼시픽 비행기. 인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2번의 환승과 3대의 비행기를 갈아타는 이번 비행 일정 중 가장 오랜 시간타는 가장 큰 비행기였다. 홍콩시간으로 밤 11시 정도에 출발해서 요하네스버그에 현지시각으로 아침 7시 정도에 도착이다. 거의 14시간의 비행시간. 비행기를 타려고 한 명, 두 명 줄을 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실감이 난다. 드디어 내가 아프리카에 가는구나.
인천발 홍콩행 비행기에서는 흑인들이 손에 꼽히더니 이번 비행기엔 나와 같은 동양인이 손에 꼽힌다. 탑승객들의 피부색이 내가 지금껏 봐온 사람들 중에 가장 다양한 것 같았다. 동양인, 백인, 인도인, 흑인, 남미인 등등, 크게만 보이던 비행기였건만 웬만한 지구인 모두가 탑승한 비행기 치고는 작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티브이로만 보던 세상은 한국인 아니면 백인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는데, 세상의 인구는 보이는 대로만 존재하진 않다는 것을 처음 두 눈으로 목격한 것 같았다.
시커먼 어둠을 가르고 이 커다란 몸뚱이를 가진 비행기가 하늘로 둥실 떠오른다. 어떤 물체든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에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경이로운 일 같았지만, 이 비행기는 정말이지 비행기 한 대라는 말보다 비행선, 배 한 척이 떠오르는 것처럼 컸고 그래서 더 신기했다.
이 큰 비행선이 하늘 위를 떠오르고 나니 비행기 안의 작은 지구가 보였다. 피부색, 인종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한국에서만 살면, 그것도 작은 도시에서만 쭉 살아온 나에겐 피부색 역시 크레파스의 색처럼 피상적인 색으로만 존재했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의 다양한 피부색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내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이래서 나를 지구촌 기준에는 황인종에 포함시켰구나. 그래서 세상에 ‘살색’이라는 컬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였구나.
피부색만이 아니다. 사이즈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비행기 중에 하나라곤 하지만 지구촌 사람들을 모두 담기엔 너무 규격화된 의자 사이즈였다. 사실 비행기를 처음 타봤으니 모든 상황들이 처음이긴 했지만 한국에선 아주 가끔 볼까말까 싶은 장면들이 오늘 처음 탄 비행기에선 벌써 몇 번이나 발견되었다. 의자가 너무 작아서 앉을 수 없다니. 비행기 안에서 살짝 마주친 사람들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세상 같은데, 실제 아프리카는, 케이프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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