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댁의 명절 음식
독일은 부활절 연휴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나는 시댁에 가지 않았다. 한국에선 보통 추석과 설날에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데, 여기서는 그만큼 긴 연휴를 가지고 있는 명절이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였다. 필리핀에서도 부활절과 성탄절이 똑같이 가장 긴 연휴라 나에게 사실 낯선 것은 아니었는데, 필리핀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았었고 지금은 결혼을 했다는 것이 차이면 차이였다.
특별히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올해는 그냥 부활절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워낙에 시부모님도 젊으시고 남편의 동생은 여전히 틴에이저라서 만나면 사랑스러운 분들이다. 그런데도 시댁에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마음 한편이 힘들어졌는데, 독일어만 써야 하는 부담감도 있겠지만 아마 지난 크리스마스 기억 때문인 것 같았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명절 기간을 앞두고 가족 중 한 두 명은 꼭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어서 제대로 만나지 못하다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정말 오랜만에 다양한 가족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다가 나는 음식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원래 나는 한국에서도 밥은 하루에 한 번만 먹으면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할머니 집이나 친척들 집에 가면 모든 어르신들이 나에게 했던 말이 밥 좀 잘 먹고 다니라는 말이었다. 그러면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음식들이 있는데 밥도 먹고 빵도 먹고 면도 골고루 먹고 싶다고 하면, 친척들이 하는 말씀은 그런 게 무슨 밥이냐는 반응이었다. 대학을 들어가며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는 쌀을 사람들이 사 먹는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가까운 친척들이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아서, 나는 그분들의 기준에서 제일 밥을 안 먹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독일에 오니, 그 하루에 한 번뿐인 밥 먹기가 밥 없으면 못 사는 사람으로 돌변했다. 나는 하루에 한 번만 밥을 먹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런 나를 보면 남편은 밥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거라고, 내가 얼마나 우리 가족들 중에서는 밥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여기서는 밥 없이 못 사는 사람으로 취급받다니. 참 세상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시댁에 가면 첫끼는 무슨 음식이 나와도 비교적 잘 먹는 편이었는데, 두 끼부터는 무엇이 나올지 긴장하게 되었고, 세끼부터는 무언가 속이 얹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어느 해부터는 시댁에 내려가기 전 미리 밥을 엄청 먹고 가기도 했었고, 또 언젠가부터는 밥이나 다른 조리식품을 미리 챙겨놓기도 했다. 그냥 슈퍼에 가서 사면 되지 않나 싶을 수 있지만, 내 속을 편하게 만드는 음식들은 보통 아시아 마트에 있었고, 그 아시아 마트는 독일 어느 동네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미리미리 챙겨놓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이런 것도 귀찮으면 근처에 아시아 음식점에 가서 사 먹을 수도 있었지만 독일에서는 보통 명절에는 모든 슈퍼마켓과 음식점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3일 정도는 꼼짝없이 시댁에 있는 음식을 먹거나 내가 먹어야 하는 음식을 혼자 만들어 먹어야 했다. 나는 가끔은 꼭 고기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고기만 먹을 수는 없는 사람이라, 고기와 빵과 감자가 주식인 명절 음식을 이틀 이상 먹게 되면 소화가 되지 않아 속이 부글거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틀째 되는 날이 보통 명절의 핵심인 날이라 친척들 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루에 초콜릿 혹은 케이크 한 조각이 꼭 필요하지만 두 조각 이상은 또 너무 달아 못 먹는 사람인데, 독일의 부활절은 달달한 것 들고 가득 찬 향연의 날이다. 아침에 할머니 댁에 가서 브레첼과 달걀과 소시지를 먹고 나면 점심엔 큰 고모 댁에서 또 비슷한 음식 뒤에 케이크를 먹고 나면 저녁에 더 커다란 고기 음식에 또 후식으론 와인이나 초콜릿을 먹는 반복.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달달하고 기름진 만찬의 명절이겠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턴 그냥 부활절 토끼 옆에 앉아 가만히 같이 풀만 뜯어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내가 삼겹살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삼겹살 고기가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삼겹살 옆에 있는 상추와 마늘과 장아찌와 고추장과 된장찌개가 같이 나와서 좋아하는 건데, 아마 삼겹살만 덩그러니 나온다면 나는 절대로 5점 이상은 먹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아침에 그렇게 바바리안 소시지와 브레첼과 버터와 햄들을 먹고 속이 답답해서 3시간을 걷다가 오후에 친척집에 방문했는데,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대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베를린에서 손님들이 왔다고 고모할머님이 음식을 대접해 주셨는데 그 음식들이 다름 아닌 소시지 3종 세트였던 것이다.
우리 엄마가 어릴 적은 물론, 내가 크고 나서도 한 번도 주지 않았던 음식이 바로 소시지였다. 엄마가 어릴 적부터 소시지는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고 하셨고, 그런 음식들을 워낙 오랫동안 먹지 않다 보니 커서도 절대 사 먹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음식이 바로 소시지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친구들 때문에 처음 먹어본 음식도 부대찌개였을 정도로 햄이나 소시지는 담을 쌓고 살아가던 내가 독일로 시집을 오다니.
물론 독일 사람들에게는 떡볶이 같다는 카레부어스트를 처음 먹고 나서 내 30년 이상 이어왔던 소시지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긴 했다. 남긴 고기, 품질이 좋지 않은 고기를 으깨서 만든 소시지가 아니라 정말 양질의 고기를 떡갈비 대신 소시지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독일 소시지는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내 평생 처음으로 정말 아주 가끔 진짜로 소시지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었는데, 그래 봤자 두세 달에 한 번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명절에 시댁에 가면 소시지가 뭔가 떡처럼 쌓여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소시지를 본 적이 없어서 어떨 때는 동그랗게 둘려진 소시지를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떡방앗간을 하시던 할머니네 집에서 길게 뽑아내던 쌀떡볶이 떡이랑 닮아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떡이라면 같은 모양의 떡이라도 쌀떡인지 밀떡인지 구분해서 취향을 드러내는 나였지만, 나에게 소시지는 이 소시지나 저 소시지나 어쨌든 별로 내키지 않는 것은 같은 소시지였다. 그런데 그 똑같아 보이는 소시지들이 남편과 시댁분들께는 엄연히 모두 다른, 서로가 전혀 다른 맛과 향과 식감을 가진 각각의 소시지라서 내가 소시지를 하나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인 듯했다.
그렇게 어제도 먹었고, 오늘 아침에도 먹었는데, 오후에 무려 냄비 세 개에 따로따로 하나 가득 담긴 소시지를 보고 나는 표정을 관리하기가 힘들어져버렸다. 거의 일 년 만에 만나는 조카손자네가 온다고 어린 송아지, 돼지고기, 양고기 소시지를 종류별로 내놓으시는 할머니의 정성을 봐서라도 정말 감사히 맛나게 복스럽게 먹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 입에도 대지 않은 소시지를 보자마자 속이 다시 느글거려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떻게 어른 아이 심지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할 것 없이 소시지와 빵과 탄산음료를 이렇게 드실까. 다른 사람들이 세 가지 종류의 소시지를 모두 다 두 개씩은 먹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겨우 소시지 하나를 겨우 끝내가며 생각했다. 분명 촌수로만 따지만 한국에 있는 내 친척들이나 지금 독일의 한 작은 시골 동네의 식탁 앞에 계신 남편의 친척들이나 모두 나에게는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가족들이 명절에 먹는 음식이 너무 달라 정말 화성과 금성에 사는 사람들이 결혼한 느낌이다.
결국 명절만 되면 뭔가 무척 많이 먹은 것 같은데도 속이 부대끼고 에너지가 빠져 집에 돌아오고 마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쿠쿠 밥솥에 밥을 하나 가득해서 김치랑만 이틀 정도 먹어야 겨우 속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뭔가 핏기가 없는 내 얼굴을 보며 엄마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고, 내가 시댁 친척분께 대접받은 소시지 3종 세트 이야기를 하고 났더니 파안대소를 하셨다.
그 파안대소가 낯설지 않은 느낌, 문득 작년 연말이 떠올랐다. 남편 친구들끼리 모여 큰 파티를 하며 라클렛을 먹었는데 이런저런 재료들을 한상 가득 차려놓고 치즈를 녹여 먹는 것이 제법 맛있어서 한국의 친척들 단체카톡에 올렸었다. 그랬는데 내 모든 친척들이 말씀하시길,
"오메, 우리 누구는 독일까지 시집가서 저렇게 슈퍼마켓에서 파는 냉장 식품들만 가지고 못 먹어서 불쌍하다."
분명 소시지와 감자와 빵보다는 골고루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모두 냉장, 신선식품들이었다. 파프리카와 양파와 브로콜리와 버섯은 그대로 썰어서만 놓았고, 파인애플과 옥수수와 햄조각과 치즈는 포장지만 뜯어놓아 그릴에 같이 구운 것이 라클렛이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친척들 눈에 나는 못 얻어먹는 사람이었다>.<
소시지 3종 세트의 여파는 꽤나 오래가서 명절이 며칠이 지난 뒤 전화했던 친구들도 나에게 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고 했는데, 그렇게 소시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친구 한 명이 엄마와 같이 폭소를 터트리며 가장 와닿게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와, 약간 우리나라 김치 같은 건가? 우리나라도 할머니 집에 가면 평소에는 배추김치만 드시던 분들도 파김치도 담고, 갓김치, 총각김치 다 다르게 만들어서 대접해 주시잖아."
순간 그 고모할머니께서 왜 굳이 소시지를 세 가지나 요리를 하셨는지 확 와닿았다. 왜 특별히 냄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거는 송아지 소시지인데 물에 익힌 거고, 이거는 양고기 소시지인데 그릴에 구웠고, 등등등 소시지의 종류와 요리 방법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신 모습이 그제야 제대로 떠올랐다. 엄청 다른 외국인들이라고 생각했던 양가의 친척들이 갑자기 좋은 거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할머니들의 모습으로 겹쳐진 듯했다.
그 각각의 소시지들이 갓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부추김치 등등이었다면 밥을 두 세 공기를 지어서라도 복스럽게 먹어드렸을 텐데, 나는 소시지는 두세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독일 사람들과 비교하면 영락없는 전원일기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한국의 아낙네였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는 소시지는 물론 맥주도 전혀 마시지 않던 내가 독일로 시집을 오다니.
어릴 때나 지금이나 놀러 가면 여전히 그 옛날 모습 그대로 할머니 방안 한편에 틀어져 있는 티비 속 전원일기를 보면, 나도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은데 어느새 시집을 그것도 독일로 와서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기겁을 하신다. 세상에 누가 아침에 소시지와 빵과 버터를 먹는다니?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시댁이라니요. 여전히 놀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