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내가 좋아하는 것
취미가 뭐예요?
한국어, 따갈로그어, 영어, 독일어까지. 이름이 뭐예요처럼 참 많이 묻고 받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무슨 답을 했던 것은 같은데, 그럼에도 항상 마음속에는 취미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이십 대까지만 해도 취미를 굳이 찾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 같다.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보다는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잘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다른 나라에서 살았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취미 없이 살아도 괜찮았고, 차라리 누군가는 취미가 없어서 다행이다 생각하기도 했고, 그래서 나 역시 취미가 굳이 필요한지 몰랐다.
취미도 여윳돈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금전적인 이유 못지않게 가장 큰 현실적인 이유는 나는 시간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도 바빴지만 주변 사람들도 바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취미 없이 잘 사는 듯했고, 그래서 나도 취미를 갖겠다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이십 대에는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취미를 찾아야겠다 마음이 든 것은 해외에서 재취업을 준비하고부터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직장을 찾는 마음가짐의 차이
나는 원래 우리나라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쭈욱 살아가다, 이십 대 중반까지는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스물다섯에 필리핀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일도 하고 대학원도 다니다가 서른이 넘어 뜬금없이 독일 사람과 결혼을 하곤 지금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에겐 아주 낯선 도시인 베를린으로 옮겨와 적응하는 중이다.
목포와 서울, 마닐라와 베를린까지. 나름 다양한 곳들에서 지내봤기 때문에 베를린도 그중에 하나일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조금이나마 살아봤다 싶은 곳들과는 전혀 다른 기후나 언어도 낯설었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일을 찾는 것이었다. 갑자기 낯선 나라에서 취업을 하는 것도 무모하지만 거기다가 나는 인류학에서 데이터 분석으로, 너무나도 다른 듯한 분야로 이직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십 대에 첫 직장을 생각하며 그렸던 그림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서른이 넘어 다시 내가 원하는 직장은, 직업은 어떤 것인지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일이라는 것이 처음 첫 직장을 찾을 때와는 달리 이미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고 난 뒤 다른 일을 찾을 때의 마음가짐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어떤 부분에선 첫 직장을 찾던 스물다섯 살이나 이직을 준비하는 서른이나 여전히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는 반면 또 어떤 부분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것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취미였다.
사실 예전에는 취미라는 단어를 굳이 이렇게 마음에 담을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진 못했다. 그러나 독일에 와서 남편을 보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보며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기에 오니 취미를 직업 못지않게 전문적으로, 일상적으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취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타국에 와서 내가 원래 할 수 있던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취미가 직업이 되어 다시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연결점이 되는 것도 보았다.
그제야 들었던 질문.
'아,
나는 왜 이제껏 그런 취미 하나 가지지 못했던 것일까.'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기분에 휩쓸릴 게 아니라 무엇이 있든 없든 그냥 내가 나일 수 있는, 나로 느껴지게 하는 취미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세상이 변해도 언제나 나다운, 나다울 취미 찾기
한 가지 일을 오래 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은퇴를 해서, 혹은 결혼을 해서, 혹은 아이를 키워서, 혹은 해외에 살게 돼서, 혹은 몸이 아프게 되어서 등등등. 사람은 살다 보면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무언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도 쉬어야 할 때가 생긴다.
그럴 때 내가 원래 하던 것들이 멈추게 되어도 여전히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래서 지금의 삶이 이렇게 이어져 가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무언가가 취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좋은 일을 찾고 싶은 마음만큼 좋은 취미를 갖고 싶다 마음도 커져간다.
'취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떤 취미를 갖지?
어떤 것이 나와 맞을까?'
그렇게 많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해왔어도 여전히 잘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내가 갖고 싶은, 평생 하고 싶은 나의 취미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