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인지 직업인지 헷갈리는,
제게도 취미가 있긴 합니다만...
나에게도 나름 몇 년을 쭈욱 이어온 취미 같은 것들이 있었다. 우선 블로그, 글쓰기가 그렇다. 스무 살에 처음 떠났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다녀와서 나에게 남은 건 다이어리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무 살의 나는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그 시절 남아공에 다녀온 사진도 하나 남지 않은 참사가 일어났다. 그때 이후로 나는 사진을 되도록 남기게 되었고 더불어 그때의 기록을 남기자 싶어 시작하게 된 것이 블로그였다. 그렇게 시작한 블로그도 어느새 10년이 넘게 이어왔으니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취미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조금은 애매하기도 했다.
취미가 업이 될 때
인류학을 공부하고 나서부터 나는 에스노 그라피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무의식에서 하고 있는 것들, 그러니까 다른 외지에 나가 직접 그 나라 사람들과 살아보며 기록을 하고 성찰을 하는 나의 일상적 습관이 에스노 그라피를 쓴다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글을 쓰는 것은 내 생각을 정리하게 하고, 그러면서 마음이 다스려지고 또 타인과 다른 문화를 알아가게 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 혹은 마음이 울적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엔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비 오는 날 침대 밖을 나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취미라 함은 우울할 때 그런 기분을 바꿔줄 수 있는 무언가로 생각했던 나에겐 알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또한 취미로 쓰는 글이 내가 하는 일과 연결되어 전문성과 기술을 요구할 때, 게다가 그것이 해외에 살면서 영어나 다른 언어로 풀어내야 할 때가 종종 엮이다 보니 글을 쓴다는 건 온전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취미가 아니게 돼버렸다.
그래서 블로그는 마음이 동하는 대로 부담 없이 이어가기로 하고 남은 취미라고 할만한 것들은 우쿨렐레와 요리였다. 하지만 우쿨렐레도 갑자기 막 기타를 잡아야겠다 싶은 생각이 계절이 바뀔 때 즈음 한 번씩 떠오르면 치는 게 고작이었고, 요리는 너무 자주 하다 보니 먹고사는 일이 되는 것 같아 이래저래 더 새로운 취미를 찾고 싶던 중이었다.
저희 남편의 취미는요,
그런 내 마음에 불을 짚인 것은 남편의 취미.
남편의 취미는 커피였다.
남편이 커피 한잔을 만드는 것을 보기 전까진 나에게 커피는 그저 물과 커피빈이 만난 커피맛 나는 물이었다. 마시면 잠이 안 오거나 심장이 너무 벌렁거릴 때도 있지만 시원한 날 마시는 달달한 커피나 케이크와 마시는 씁쓸한 커피는 제법 기분을 좋게 한다는 것. 그런 커피를 하나하나 과정을 나눠 하나의 과학으로 보여주는 것이 남편의 취미, 커피였다.
남편의 커피 세리머니는 슈퍼마켓에서 증류수를 사는 것부터 시작된다. 자동차에 넣는 용도나 식물에 주는 용도지 마시면 안 된다고 적힌 물을 왜 살까 싶었더니 그 증류수에 남편은 특별히 제조된 소금과 미네랄을 아주 극소량의 배합량을 직접 넣어 만드는데, 그 0.0...1그램에 해당하는 양을 잴 수 있는 미세 저울이 있다는 것도 삼십 년 인생 동안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그렇게 물을 만들고 나면 커피빈이 있었다. 커피빈 종류도 어찌나 많던지 베를린에 있는 커피 볶는 곳들은 모두 다녀본 듯한데 거기에 화룡점정은 커피 그라인더인 듯했다. 카페마다 한 두 개씩은 있는 커피분쇄기들이라 그냥 집집마다 있는 밥솥 같은 건데 비싼 밥솥과 싼 밥솥 정도 차이가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몇 년 동안 사 먹을 수 있는 커피값보다 비싼 커피분쇄기들이 존재했다. 커피를 타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워너비 분쇄기들인지 남편은 카페에 가면 귀신 같이 비싼 분쇄기들을 알아챘다.
우리 집에는 남편이 대학교 때부터 중고로 산 작은 커피 그라인더가 있다. 무슨 알 수 없는 결정체의 크기로 고정해서 커피가루를 분쇄하고 나면 온도계가 달린 주전자에 적정온도에 맞게 물을 끓인다. 스톱워치를 세팅한 후 적당량의 커피가루와 물이 섞이도록 저울 위에 컵을 올리고 정해진 시간과 양에 맞춰 물을 부으면 드디어 남편은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냈다.
도대체 왜 커피와 차에 '세리머니', 의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걸까 싶었는데, 남편의 커피 한 잔을 보면 가히 의식이라고 할 법도 했다. 처음 남편이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내는 전 과정을 봤을 땐 너무 신기해서 비디오로 모두 찍어 놓기도 했다.
이렇게 남편이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적어 내려보고 나니 나에게 커피 한잔이란 이젠 단순히 카페에서의 차 한잔이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화학공정과도 같은 분위기인 것 같았다. 나에겐 카페보다 실험실 같은 이 분위기가 화학을 전공한 뒤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남편에겐 그의 손에 다른 화학물질이 아닌 커피가 있는 것만으로도 다시 연구실을 카페로 돌려놓는 마법 같은 물질은 아닌가 싶었다. 나에겐 저리도 복잡하게 보이는 커피 한 잔을 만드는 것이 그에겐 너무나 평범한 일상인 듯 그의 익숙한 손놀림에서 자연스레 녹아났다.
친구 따라 커피 마신다
무슨 커피를 이렇게까지 마시냐며 네가 유별난 것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왜냐하면 남편을 커피의 세계로 이끌어 간 사람이 바로 남편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말대로 남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건 그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 바로 알게 되었다. 한국에선 남자들끼리 카페에 가면 그렇게 오글거린다던데 남편의 친구가 베를린에 오면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카페 투어였다. 나는 아무리 여자들이 카페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두 번, 세 번 넘게 카페에 가면 카페도 지겹고 실증날 수 있다는 것을 남편과 남편 친구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커피 한 잔, 두 잔도 겨우 함께 먹는 디저트 때문에 마시는데 남편과 남편 친구는 디저트도 없이 오로지 커피만 세 잔을 세 군데 카페에서 음미하곤 해가 져서 집으로 향했다. 그걸 보고 나는 내가 지금껏 좋아했던 건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이었지 커피는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다.
나에겐 저렇게 유별나고 독특해 보이는 남편과 남편 친구의 커피사랑이 그들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평범한 취미생활인 것이 신기했다. 그건 마치 내가 평소에 어울리던 사람들이 모두 국제개발, 인류학, 시민단체에 있어서 나에겐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수의 활동가나 인류학자들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막상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 같았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물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친하다 싶은 친구들이 내 우물 안엔 한 명도 없던, 다들 화학을 공부하고 화학회사나 연구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너무나 연구실 프로젝트 같은 커피 만드는 과정이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취미생활인 것도 같았다.
거기다가 남편은 커피 하나였지만 다른 친구들은 취미로 맥주나 와인도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나마 남편의 취미는 단순하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이 정도까지 심오하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보다는 나처럼 커피를 커피 향이나 커피맛이 나는 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지 남편이 말하는 커피의 그 다양한 맛이나 과정을 알고 함께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서 오히려 커피를 통해 남편은 특별한 우정을 이어 나가기도 했다. 평소에는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도 싫어하는 독일 사람들이 새로운 커피빈을 찾거나, 도구를 찾거나, 레시피를 찾으면 스스로 사진을 찍어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와 공유하는 것을 보면 참 취미의 힘이라는 것이 놀라운 것이구나 싶었다. 퇴근하고 나서 침대 위에서 쉬면서 보는 유튜브마저 커피에 관한 것, 심지어는 논문도 찾아보며 그것이 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만 즐기는 기술,
취미의 장점
이 정도면 취미가 아니라 업이 아닐까 싶은데 업이 된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취미라서 이렇게 재밌고 기분이 전환된다는 남편. 남편과 남편의 친구들을 보면서 이래서 취미를 갖는다는 것이 단순한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며, 또 언젠가 알 수 없는 시기를 대비해 가질 수 있는 대체 직업이 될 수도 있는 굉장히 포괄적이고 매력적인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남편도 즐기고,
그래서 그에게 배울 수도 있는
커피를 취미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남편과 한 해를 함께 살아보며 이제는 커피를 만드는 남편보다 남편이 만들어 낸 커피에 더 흥미로워질 정도로 남편의 낯선 커피 만드는 취미가 익숙해졌다. 하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는 커피만 마실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커피보다는 커피랑 함께 먹는 케이크가 있어야 하고 커피만 마시면 심장이 아프고 어느 날은 커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오히려 더 피곤한 날들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남편이 없으면 저울과 분쇄기와 온도기 없이 그저 아몬드 우유에 커피가루를 타서 마시는 게 더 맛있기도 하다.
취미를 갖는다는 건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함으로써 따라오는 지식이 늘어나고, 인간관계도 유지할 수 있거나 혹은 늘어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으며, 또한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나의 잠재적인 능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커피는 이러나저러나 나에겐 맞지 않는 취미였다.
그렇게 매일같이 커피를 만드는 남편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취미 하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던 시간도 한 해가 모두 지나갈 무렵. 어느 날, 그 날은 이렇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