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실로폰 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홀린 듯이 입구에 들어간다. 들어가 보니, 영롱한 푸른 수조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잔잔한 물결 위로 하얀 도자기 그릇들이 떠다닌다.
물결에 몸을 맡긴 하얀 그릇들이 서로 부딪친다. 그릇들이 만들어낸 맑고 청아한 소리가 전시장 안을 가득 메운다.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그릇들이 조화로운 움직임을 이어간다. 크기가 제각각인 그릇들이 각자의 몸에 맞게 빠르게 흘러가기도 느리게 흘러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전시장 주변에 둘러앉아 그릇들이 내는 소릴 들으며 더위를 식혔다. 그리고 우리가 있었다. 그릇들이 물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나듯 우리도 이곳에 모였다. 광주 동구 투어라는 거창하고도 소박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나와 일행은 오전에 처음 만났다. 우리는 지역도,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모두 달랐다. 우리는 어제 본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했다. 서로 편히 맞이했다.
간단히 자기소개 후 명찰을 목에 걸고 인솔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서로 간격을 두고 걸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더위에 조금씩 지쳐갔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힘듦을 함께 견디고 있어서인지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에 다녀온 후 우리는 잠시 티타임을 가졌다. 미묘하게 어색했던 분위기는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 향과 함께 날아갔다. 테이블마다 서로 다른 억양소리가 뒤섞여 카페 안을 가득 메웠다. 경상도와 충청도, 서울과 수원, 광주와 대전. 너무나 다른 우리는 각자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고 흥미로워하며 때론 감탄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
티타임 후, 우리는 서로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사람들이 잘 따라오는지 인솔자가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 먹으러 가는 길이 가깝게 느껴졌다. 주최 측에서 준비해 준 음식이 맛있었고, 테이블 위로 술잔이 오고 갔다. 덕분에 분위기가 빠르게 무르익었다. 이날을 위해 초대된 하모니카 연주자, 뮤지컬 출신 가수, 국악인이 우리의 밤을 예술로 만들었다. 우리는 흥에 취했고 떠나기엔 아쉬운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숙소에 돌아온 나는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다. 감은 눈앞에 그릇들이 떠다녔다. 그릇들은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한다. 그릇들이 내는 크고 작은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마주칠 일 없는 우리가 그릇처럼 모여 각기 다른 크고 작은 소리를 낸 것 같았다. 비록 오늘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함께한 순간만큼은 하나의 조화를 이루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든 특별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