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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 연습 Sep 26. 2021

무급휴직


회사가 어렵다. 벌어오는 돈이 없어서 직원들 밥 먹일 돈도 아껴야 한다. 당분간 일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줄 테니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 싶은 사람들은 말하란다. 숟가락 잠시 놓을 사람을 구하는 거구나. 나는 옛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손을 번쩍 들었다. 


20년 전 뉴스에선 IMF가 보도됐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도 잘릴 수 있느냐고.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다. 불안했다. 하지만 이미 저녁밥을 배부르게 먹은 뒤였다. 편식과 걱정이 통하지 않는 시절이었다. 


10년 전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도, 나에게 그걸 말해주지 않았다. 뉴스에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건설업계의 불황이라는 주제가 다뤄졌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메마른 당부를 할 뿐이었다. 전화를 받지 말거라. 문을 열어주지 말거라.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숟가락 하나였다.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더니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지 않았더니 낯선 목소리가 아버지의 이름을 외쳤다. 그건 법원의 목소리였다. 법원은 문을 기어코 열어젖혔다. 법원은 주황색 스티커를 집안 곳곳에 붙였다. 법원은 이름표를 붙이듯 주황색 스티커를 집안 곳곳에 붙였다. 법원이 돌아간 뒤 나는 먹고 있던 밥을 마저 욱여넣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와 계셨다. 이름표는 모두 떼어진 채였다. 어머니는 저녁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먹었다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드셨느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 시절 그들의 숟가락은 무거워 보였다. 그에 비해 내 숟가락은 너무, 너무 가벼웠다. 나는 내 숟가락이 너무 가벼운 나머지 숟가락을 그만 놓아버리고 싶었다. 


적당한 사유로 무급휴직 신청서를 채웠다. 대충 써서 제출하는 데엔 어떠한 죄책감도 거리낌도 없었다. 아무 계획 없다. 그냥 쉴 거다. 그래도 되니까. 눈치 볼 것 없다. 아파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걱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누구 하나 가슴이 문드러질 일도 없다. 다만, 문득 생각이 났다. 그때 나는 숟가락을 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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