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가 꼬막비빔밥을 시켰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자신 있는 목소리로 “꼬막비빔밥 하나요”를 외쳤다. 메뉴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이 콩나물국밥집은 꼬막비빔밥이 맛있다.
저번에 콩나물국밥을 주문하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꼬막비빔밥을 한 번 먹어보라고 했었다. 그때 나는 굳이 콩나물국밥을 먹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아주머니의 말을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흡족한 표정으로 카드를 내미는 나에게 아주머니도 뿌듯한 미소를 보냈었다. 그 뒤로는 콩나물국밥 대신 꼬막비빔밥만 먹는다.
“비빔밥이요?”
아주머니가 반문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네, 꼬막비빔밥이요’라고 말했어야 했다. 몇 분 후 눈앞에 놓인 돌솥비빔밥에 나는 크게 실망했다. 오늘 나는 꼬막비빔밥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아무거나 상관이 없었던 게 아니라 꼬막비빔밥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꼬막비빔밥을 시켰는데..”라며 중얼거렸다. 아주머니는 당황하셨다. 나는 그게 또 싫어서 얼른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었다. 모두가 내 탓이었다. 나는 콩나물국밥집에 꼬막비빔밥이 있는 것도 신기해서 다른 비빔밥이 있을 줄은 몰랐던 거다. 황급히 둘러본 메뉴판에는 돌솥비빔밥이 떡하니 적혀있었다.
과거에 꼬막비빔밥은 콩나물국밥을 압도하며 한 자리를 차지했으나 현재의 돌솥비빔밥은 꼬막비빔밥을 대체하지 못했다. 나는 새콤달콤한 꼬막비빔밥을 생각하며 그 심심하고 특징 없는 돌솥비빔밥을 씹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꼬막비빔밥을 하나 더 시킬까. 그러면 비빔밥이 맛이 없는 줄 알고 아주머니가 실망할 텐데. 아니, 비빔밥도 괜찮기는 한데 나는 지금 꼬막비빔밥이 먹고 싶은데 이걸 억지로 먹는 셈이라고. 무의미한 푸념을 그렇게 돌솥에 넣고 비벼 씹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계산대 앞에 선 내게 아주머니는 미안하다고 하셨다. 내 잘못인데, 돌솥비빔밥의 존재를 몰랐던 내 잘못인데, 미안하다는 말이 싫어서 나는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콩나물국밥집에서 꼬막비빔밥과 비빔밥을 파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메뉴를 확인하지 않고 주문하는 건 잘못이다.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당연히 같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확인을 해야 한다. 원하는 게 확실할 때면 더욱 확실하게 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는 전혀 다른 것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고는 나를 실망시킬 의도가 없음에도 실망시킨 미안함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땐 모두가 불만족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내 머릿속과 상대의 머릿속은 꼬막비빔밥과 돌솥비빔밥만큼이나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