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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선 Oct 14. 2020

건망증

웃긴데 슬픈  이야기들

  오래간만에 절친 가영이랑 긴 수다를 펼쳤다. 중국의 국경절 중추절 8일의 연휴기간동안 관광도시인 칭다오로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12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자 전체 칭다오시민을 상대로 역학조사를 실시중이라고 뉴스에도 떴다. 가영이가 사는 동네에는 어제부터 의료진들이 진을 치고 24시간 밤낮으로 한명도 빠짐없이 코로나 역학조사를 실시한다고 하니 어젯밤에 길게 늘어선 줄을 서서 핵산검(核酸检测)받았다고 한다. 살다살다 희한한 체험을 다 해 본다며 가영이는 허탈해 한다. 끝이 보이질 않는 코로나 19 사태에 지쳐가는 민심이다.

  나는 문득 알려주고픈 콘텐츠가 생각나서 노트북을 오픈했다. 안경이 필요하다. 평소에 노안이 찾아와 근시 안경은 가까운 물체를 볼 때는 필요 없고 거추장스러워 잠시 머리 위로 올려놓는다. 가영이랑 장시간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가 갑자기 안경을 어디에 뒀는지 깜빡했다. 안경 찾아 한참을 헤매고 다닌다. 침실로 거실로 심지어 주방으로 온 집안 구석구석찾아봐도 눈에 띄질 않는다. 폰 너머로 가영이가 늘 놔두는 자리를 찾아보라며 하는데 꼼꼼하게 다 찾아봐도 없다.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초조함에 머리를 싸매는 순간 잡히는 물체가 있었다. 머리 위로 밀어 올려놓고 까맣게 잊고 있던 안경이었다.

  자영이랑 나는 웃음폭탄이 터졌다. 이 건망증을 어떡하면 좋냐며 깔깔깔 자지러지게 웃으며 쓸어진다. 우울하던 정서가 밀려나갔다. 자영이는 타고난 비상한 기억력의 내가 어쩌다가 이리 건망증에 헤매냐며 늙어감에 노화현상에  슬퍼진다며 감개무량한다. 보여주려던 콘텐츠는 또 잊어버리고 주변 사람들의 건망증 일화들을 나열하며 웃고 떠든다.

  일화 하나. 자영이가 아는 고중동창생이 어느 날 전화가 와서 문의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휴대폰이 안 보인다며 중얼중얼하는데 본인이 지금 귀에 대고 통화 중인 건 잊어버리고 허망에 찾아 헤매고 있더라는.

  일화 둘. 아주 오래전 20여 년 전 나의 친정어머니 생전에 뇌졸증으로 쓸어져 한 달간 입원해서 간호할 때의 일이다. 병실 하나에 세명의 환자 침대가 있었고 옆으로 호인의 간이침대가 하나씩 놓여 있어 보통은 간호인들도 함께 꽤 일정기간 숙식생활하며 정도 들고 관계가 돈독해진다. 어느 날 초저녁, 왼편의 환자가 갑자기 배를 붙들어 잡고 대굴대굴 구르며 고통스럽게 신음한다. 간호인 중에 20대 후반인 내가 가장 어린지라 잽싸게 다른 건물인 의사 직실까지 헐레벌떡 뛰어가서 의사를 모시고 왔다. 의대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앳된 의사였다. 병실에 도착해 환자랑 얼굴 마주하는 순간 그 의사분은 얼굴이 시뻘게지며 난감조로 너무 다급하게 오느라 청진기를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며 쩔쩔맸다. 목에 청진기를 버젓하게 걸치고 본인만 모른다. 나는 웃음이 터지는걸 가까스로 참으며 고개 숙여 보라고 말했다. 그제야 발견한 청진기를 들고 머쓱해하며 진맥을 하고는 맹장염이 의심된다며 내과로 가서 정밀검사해봐야 한대서 그 환자의 보호자인 남편이 둘러 업고 내과로 향했다. 심혈관전문병원에 입원해서 맹장염이라니, 그 환자제대로 설상가상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난 후 남은 두 환자와 보호자 네 명이서 그 우왕좌왕하던 당직의사를 두고 한바탕 왁자지껄 웃어댔다. 오죽 급하면 아이를 업고서 아이를 찾는 상황과 똑같은 해프닝 장면을 햇내기 의사가 연출해 낸 것이다.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니 긴급 상황 시에 대처능력이 아직 미숙한 초짜 때문에 보고 있던 우리들은 웃을 일이 생겼다. 그때 너무 웃겨서 이제껏 기억 속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티브이에 나오는 예능이나 주변 지인 친지들 중에 건망증에 관한 웃기는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넘치고 넘쳐난다. 요즘 사람들은 건망증이 심하면 치매가 오는 거 아닐까 하며 바짝 긴장하고 대비하고 예방하려고 한다. 그 예로 막냇동생네 올케는 노화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건망증이 심하다. 지금까지 태워먹은 물주전자가 대여섯개는 될 테고 찌개 끓이다가 깜빡해 태운 냄비는 수도 없다고 한다. 얼마 전 추석 연휴에 가족회식을 했다. 역사와 철학을 좋아하는 동생이랑 수다가 늘 인문학 쪽이었는데 예전과 달리 난데없이 소동파(苏東坡)의 사()를 줄줄 읊조리며 분위기를 살린다. 평소에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사는 올케도 이따금씩 한 구절씩 읊조리며 술맛도 무척이나 다. 나는 의아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네 앞 뒤 동에 살면서도 조심스러워 회식을 못해 얼굴을 자주 못 본 사이 이상해졌다고 하니 건망증이 너무 심해져서 치매로 넘어갈까 두려운 나머지 예방차원에서 시나 시조 같은 거 외워서 주절주절하면 좋다고 어디선가 봤다고 실행에 옮기는 중이란다. 올케 말을 따르면 동생은 100수 정도는 외워서 매일 앉으나 서나 운동할 때나 짬만 생기면 중얼거리니 옆에서 너무 반복적으로 들으니 자기도 몇 수정도는 머리에 각인이 되었다며 신나 한다. 옛말에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도 읊는다는 말을 실제로 체감 중이라며 자조한다.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나는 생각했다. 소동파의 찐 팬인 나의 입장에서는 소통할 소스가 많아 너무 기분 좋다.

   또 가지를 치게 되는 이야기 하나, 건망증 하면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4년~1684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중기 유명한 독서왕인 김득신이 어느 날 한 손에 담뱃대를 들고 팔을 휘저으며 활보한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니 김득신이 끊임없이 중얼거리는데, “어, 내 담뱃대 어딨지? 아, 여기 있구나. 어? 내 담뱃대? 아, 여기 있구나” 하면서 걸어갔다고 한다. 양팔을 휘저으면서 힘차게 걷다 보니 담뱃대 든 손이 뒤로 갔을 땐 담뱃대가 어디 갔나 했다가 그 손이 다시 앞으로 왔을 때 아 여기 있구나 했다는 것이다.
  또 하루는 김득신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데 같은 방향으로 어가스님이랑 만났다. 김득신이 스님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스님은 절에 불공드리러 간다고 했다. 둘이서 산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다가 김득신이 스님에게 어디 가는 길이냐고 또 물었다. 스님이 불공드리러 간다고 하니 “아, 그러시냐”라고 하고는 좀 가다가 또 스님에게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스님이 불공드리러 간다고 하니, “절에서 큰 행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오늘 참 많은 스님들을 보네요” 했다고 한다.
  김득신은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앓아 후유증으로 건망증을 얻어 지각이 발달하지 못해 노둔한 편이었는데  한 권을 석 달 읽고도 한 구절도 기억 못 했다고 한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둔함을 극복하고 39세에 진사에 합격하고 59세에 증광시 병과에 합격해 관리에 올라 17세기 당대에 알아주는 한시 문학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독서기(讀書記)"를 보면 "사기(史記)"의 ‘백이전(伯夷傳)’은 억만 번을 읽어서 서재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고 지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사서삼경(四書三經)", "한서(漢書)", "장자(莊子) "등 책들도 적게는 수천 번, 많게는 6만~7만 번 읽었다고 한다.


"한유 문장 사마천 『사기』를 천 번 읽고서야 (韓文馬史千番讀)
금년에 겨우 진사과에 합격했네 (菫捷今年進士科)"

  

  다산 정약용은 "글이 생긴 이래 상하 수천 년과 종횡 삼만리를 통틀어 독서를 부지런히 하고 뛰어난 이로는 백곡을 제일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김득신을 높게 칭송했다. 김득신은 "백곡집(柏谷集)"을 남기고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역사 속 인문인물들의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가영이에게 한바탕 썰을 풀어주었더니 역시 귀 쫑긋 즐겁게 잘 들어준다. 건망증이 심해져 치매로 번져질까 그것이 우려스럽다 하다보니 스토리가 나온다. 가영이는 자신 회사의 회계사가 올해 50세인데 그 아버지가 92세로 십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데 가족 전체가 지옥이라며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아버지는 1950년에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지원한 전쟁이라고 중국식 호칭)"에 참전한 인민지원군이다. 한국전쟁에서 구사일생으로 생환해 90세 넘도록 장수하면 축복일텐데 늘그막에 치매가 찾아와 한번씩 발작하면 혁띠든 뭐든 하여간 끈처럼 생긴 물체면 손에 휘감고 휘둘러대서 가까이 있던 사람은 봉변을 당하며 크고 작은 상처를 입히는 불상사를 치룬다고 한다. 뭐라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하며 광기를 부릴 때면 괴물같아 4남매의 마음고생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고 한다. 알고 보니 전쟁의 트라우마가 치매증상이 발작하 조선말로 "폭발해요"라뜻의 발음반복하며 미쳐버린다고 한다. 치매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하필 잃어버리면 좋을 그 기억을 되살려내는 부분이 전쟁통의 상황이란 것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한평생 가장 지옥같았던 전쟁의 기억을 치매에 실어서 아예 깡그리 잃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걸 오히려 되살려내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스토리를 듣고 있는 내가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치매에 대한 공포심은 이런 현실 속의 구체적인 사연들을 듣고 있으면 절로 생길 수 밖에 없다.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슬픈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드라마 보며  눈물을 바가지로 쏟은 기억이 난다. 치매란게 정말 무서운 병이구나 하며 공포증을 증폭시켜던 계기를 마련해 줬다.

  건망증이 심해져서 치매로 발전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도 있다. 다행이도 건망증노화로 인한 기억력저하와 감퇴여서 잊어버리는 것이니 극복하고 예방 가능해 신경을 써서 관리하면 된다. 치매 예방한다는 게임이나 습관 음식 등등 주워듣는 족족 공유하고 실행한다. 독서나 바둑두기가 치매 예방에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독서만이라도 늘 하는 일상이니 꾸준하게 견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20대인데 건망증이 있는 아들이 가끔 스스로 자신을 두고 "7초간의 기억력, 붕어"라 자책하며 유머를 날린다. 나는 긍정적으로 받아쳐서 "아직 젊은이이니까 그 건망증은 천재성의 반증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며 다독인다. 마음에서 받아들이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나쁜 기억들은 건망증으로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들로 머리를 산뜻하게 채워지면 일상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울까.

  건망증으로 난감할 경우도 있겠지만 엄연히 극복이 가능하다. 노화에 따라온 건망증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듯 하다. 세월이 주는 선물 쯤으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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