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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Jan 31. 2022

꿈속에서는 할 말 다 한다

꿈이 있어 다행이야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사실 누구나 꿈은 매일 꾸는데 기억을 못 하는 것뿐이라 하니, 나는 꿈을 자주 꾼다기보다는 수면이 깊지 않을 때가 많이 있나 보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것인가? 그래도 난 꿈을 꾸는 것을 좋아한다.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다.


  나는 보통 꿈을 꾸면 꿈속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이를 테면 내가 연예인 누구와 절친 사이로 나온다든지,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때 친구가 갑자기 내 직장 동료로 나온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꿈은 매우 현실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가끔은 꿈을 꾸면서도 '음, 이건 꿈이구나.'라고 인식을 할 때가 있고, 어떤 꿈은 정말 현실이라고 생각되는 꿈이 있는데 이 꿈은 바로 그 후자에 해당된다.



  꿈속에서 남편과 내가 부부 독서 캠프 같은 곳에 참여를 했다. 며칠 동안 부부들이 도심을 벗어나 통나무로 만든 건물 같은 곳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남녀 숙소가 따로 정해져 있었다.) 책을 읽는 신기한 캠프였다. 그런데 그 캠프에 참여한 대략 7~8쌍의 부부들이 정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개꿈'임을 나타내는 엉뚱한 인물들이 하나도 없고 진짜 현실 속 어딘가에서 만날 법한 일반인들 말이다.


  다 같이 책을 읽고 부부들이 모두 함께 어떤 한 장소에 모였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느 한 남자분이 호주머니에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더니 갑자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아무도 뭐라 안 하는 것 같으니까 여유 있는 태도로 담배 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황당해서 그 남자분의 아내 되는 분을 얼른 쳐다보았는데 그 아내 분은 남편을 향해 '으이그, 못 말려.'라는 듯 웃으며 곱게 눈을 흘길 뿐이었다. 공룡 씨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잡담만 나누었다. 


  우리 남편 공룡 씨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만약 공룡 씨가 사람이 많이 모인 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운다면...? 나는 당장 못하게 뜯어말리고, 나중에 둘만 있을 때 잔소리 핵폭탄을 몇 백개나 투하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아내 분이 밉지 않다는 듯 담배를 피우는 남편에게 눈만 흘기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기요, 죄송한데 담배는 나가서 피우시면 안 될까요?"

 

  두둥...! 그때 그 남자분에게 다가가 용감하게 말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나였다! 답답함과 화를 못 누르고 내가 나선 것이다.


  "......!?!?"


  그분은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나를 보더니 당황스러운 얼굴로 얼른 밖으로 나가 버렸고, 혼자 남은 그 아내 분은 어색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이 아내 분과 대화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냈던 터라 꿈 속이었지만 꿈인지 몰랐던 나는 앞으로 어색해지겠네...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마음이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그 이후로 다 같이 또 여러 개의 긴 테이블이 모인 방에서 책을 읽는 장면이 나왔는데 거기까지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 말을 던진 후로 그 부부와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꿈에서 깨고 나서야 꿈이라는 걸 깨닫고 휴, 다행이다... 안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만약 끙끙 앓고 말도 못 한 채 그 담배 연기를 다 맡고 나서 잠에서 깼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 꿈 속이었지만 당당하게 할 말 하고 그 남자분을 담배와 함께 방에서 내보낸 것이 참으로 후련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실에서의 나는 전혀 이와 같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꿈이 아니고 진짜 실제 상황이었다면 그 남자분 대신 방에서 내보내진 것은 바로 나였을 것이다. 담배 피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속앓이만 하다가 '에잇, 그냥 내가 나가고 말지.' 하며 조용히 방을 나왔을 게 뻔하다.



  나는 남에게 싫은 소리, 거절을 잘 못한다(혈액형을 100퍼센트 믿지는 않지만 내 혈액형조차 소심하다는 A형이다.). 싫은 소리나 거절은 물론이고 내 주장도 크게 말하는 성격이 못 된다. 하물며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누가 나에게 "뭐 먹을래?"라고 물으면 "아무거나. 난 다 괜찮아. 너희들이 좋은 걸로."라고 늘 대답하는 나다.


  여럿이 모여 있는 카톡 단톡방에서도 나는 주로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눈팅족'이다. 물론 시간이 오래 지나 그 방에 있는 멤버들과 좀 친해지고 하면 잘 이야기하는데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활동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당당해지고 할 말 다하는 순간은 꿈을 꿀 때이다. 이상하게 꿈속에서만큼은 하고 싶은 말도 잘하고 모험심도 투철해진다. 심지어 꿈에서는 완전 여전사 뺨치게 전투도 잘한다. 꿈속에서는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걸 여러 번 경험해서 그런지 더 간이 커지는 것 같다. 실제로는 달려도 달리는 것 같지 않는 느림보인 내가 꿈속에서는 말처럼 달리고 하늘을 날며 요리조리 도망도 잘 간다.



  현실 세계에서 억눌려 있던 그 무엇이 꿈에 반영되어 꿈에서나마 해소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일까? 현실에서와 같이 꿈속에서조차 소심하게만 살아간다면 정말 억울하고 힘들었을 텐데 참 다행이지 싶다. 난 그래서 꿈을 꾸는 게 좋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꿈처럼 살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내가 이제 막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알을 조금씩 깨고 나오기 위한 노력이다.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한,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생각들꺼내놓기 위한 노력들인 것이다.


꿈속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이제는 꿈을 현실로!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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