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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Jan 24. 2022

손가락이 아프다

나이가 드니 비로소 깨달아지는 것들

  젊었을 땐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가 다 아파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그럴 수밖에. 별로 아픈 일이 없었으니까.


  30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플 땐 뭔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체했다거나 무리했다거나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거나.


  나이 40이 넘어 소위 중년이 되면서부터는 정말  그냥 아플 때가 많은 것 같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전보다 특별히 무리해서 뭘 하는 게 없어도 몸에 변화가 생기고 몸 어디에선가 이상 신호를 보내는 거다. 슬프지만 이게 바로 ‘노화’ 현상이겠지.


  한 예로, 피부의 성질이 변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피부가 쉽게 건조해지고 가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입술이 너무 붓고 가려워서 한동안 피부과에서 처방 받은 연고를 계속 발라야 했다. 그런데 바를 때만 반짝 좋아지고 또 재발해서 이제는 그냥 보습만 열심히 해 주고 있다.


  요즘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손가락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꼭 아침이 아니더라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오른쪽 손가락들을 구부리기가 힘들다. 붓는 것은 아닌데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잘 구부러지지가 않는다. 그러다 1정도 지나면 괜찮아진다. 손가락을 무리해서 쓰면 상태가 더 악화되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유롭게 손을 쓰지 못한다. 잼 병조차 돌려서 열기 힘들다.


  혹시 류마티스 관절염이면 어쩌나 염려되어 피 검사까지 받아 보았다. 검사를 위해 엄청난 양의 피를 뽑았다. 주사기 하나 정도만 뽑을 줄 알았더니 주사기 서너 개는 채웠던 것 같다. 어쨌든 다행히도 류마티스 관절염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딱히 치료 방법은 없다. 의사 선생님이 손가락 사용을 줄이고 따뜻한 물에 자주 찜질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라고 하셨다.


  손가락이 아프면서 몸의 모든 신체 부위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한 듯 여겼던 그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인가 엄마가 손가락이 붓고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고 하셨던 적이 있다. 다행히 지금은 거의 괜찮아지셨지만 그 증상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어하셨었다.


  당시 나는 그 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심장도 아니고 간도 아니고 손가락쯤이야...생각했던 것이다. 손가락이 아파 본 적도 없었고 아파 봤자 그저 손가락인데 별일이야 있을까 큰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내가 나이 들어 손가락 통증이 생기다 보니 엄마가 그때 얼마나 힘드셨을지 깨달아진다.


  엄마는 손가락이 퉁퉁 붓기까지 해서 지금의 나보다 상태가 심각했었는데 매일 그 손으로 집안일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 엄마를 좀 알아서 도와드리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진짜 손가락 까딱 안 하던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다. 엄마는 나나 동생한테 집안일을 전혀 안 시키셨다. 그만큼 우직하게 말없이 엄마의 역할을 오롯이 감당하셨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 부모님은 당신 자신보다 딸의 건강을 염려하시며 이것저것 좋은 영양제며 유기농 식재료들을 많이 갖다 주신다.


부모님이 사다 주시는 유기농 혹은 무농약 먹거리들


저렇게 한가득 가지고 오신다. 이제는 장바구니가 되어버린 분리수거용 가방에 담아서 말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지나가는 말로 흘리듯이 한 말까지 일일이 기억하시고 지나친 걱정을 하신다. 그래서 이젠 웬만해선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내 걱정을 많이 하시기 때문이다.




  손가락 얘기가 어느덧 부모님 얘기로까지 흘러가 버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만큼 손가락 통증을 통해서 느끼는 바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뒤늦게 철이 든 모양이다. 뒤늦게라도 철이 들어 다행인 건가?

 

 빨리 손가락 통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커다란 수박이 든 망도 거뜬하게 들고, 병뚜껑도 팍팍 잘 따고, 컴퓨터 작업을 아무리 오래 해도 끄떡없었던 나의 튼튼한 손가락이 그립다.

 

  나이가 든다는 건 손가락까지 그리워지게 만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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