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업에서 하루하루 어휴 - 29번
어느덧 지금 다니는 회사를 다닌 지 10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그렇게 길지 않은 10개월 중 2달 정도를 지방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출장이 아니라 고객사 내 사무실 한편에 집을 놓고 일을 하는 상주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곳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브런치 글이 어느덧 2개나 올라가 있어서
이것도 같이 읽고서 이 글을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예전 글의 링크를 남겨두겠습니다.
- 갑을병정무, IT 업계에서 아웃소싱 : https://brunch.co.kr/@kakarman/127
- 갑도 아닌 을도 아닌 병의 이야기 : https://brunch.co.kr/@kakarman/136
일단 상주를 하게 된 곳은 천안에 있는 한 대학교입니다.
해당 학교에서 온라인 학습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서비스 중 일부를 새롭게 개발하는 사업 공고를 냈고
그 사업 공고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여러 개의 업체가 모여서 같이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학교의 위치가 천안에 있고 제가 다니는 회사는 서울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주를 하기 전에는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광명역을 가고
광명역에서 KTX를 타고 천안아산역에 내려간 뒤에
다시 택시를 하고 학교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을 다 합치면 약 3시간 정도가 필요하였습니다.
KTX는 단 20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는 시간이 꽤나 길다 보니
아침 7시 전후로 나와야 도착을 10시 넘어서 할 수 있었고
끝나고 다시 집에 돌아가려면 6시에 출발을 해도 밤 10시가 넘어야 집 근처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초기에는 한 달이 좀 넘는 기간을 이렇게 다니다 보니 많이 체력적으로 지쳐갔습니다.
또 집에 와서는 다른 프로젝트 업무도 해야 되다 보니
평균 2시가 넘어서 잠을 자고 다시 6시 30분쯤에 일어나서 천안을 내려갈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거리적인 부분 때문에 결국 지방에 내려가서 업무를 하겠다는
상주를 결정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내려간 뒤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두 달 정도는 내려가서 일을 하다 보니 이것저것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는데,
가장 불편한 점은 역시 환경이었습니다.
일단 주변에 일을 같이하는 분들은 우리 회사 소속은 오직 저 하나였죠.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가 우리이다 보니
여기에 있는 모든 개발업체 구성원들이 하나씩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주로 개발적인 내용이다 보니 제가 바로바로 답변을 드리기는 매우 어려웠고
오히려 본사에 있는 담당자를 연결시켜주는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타 개발업체의 경우 저와 같은 기획자가 내려온 것이 아니라
전부 개발자이다 보니 같이 기획분야에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 같이 소통을 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환경적으로 큰 어려움을 주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좋은 것은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점심을 먹고서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낮잠을 자야 오후 시간에 일을 잘할 수 있는데
천안에 있는 동안은 혼자 후다닥 점심을 먹고 와서 쉴 수 있었기에 좋았습니다.)
업무 환경도 많이 불편하였습니다.
본사에서 일을 할 때에는 좀 크기가 있던 모니터를 썼습니다.
그런데 상주를 내려올 때에는 그 큰 모니터를 들고 오기가 힘들어서
상대적으로 작은 모니터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볼 수 있는 양이 많이 줄어들면서 업무의 효율성도 많이 낮아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기존에 쓰던 사무용품도 거의 가져오지 못하다 보니
많은 것이 불편하였고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일 불편했던 점은
갑은 갑대로 이야기를 하고
을은 을대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특히 우리와 계약이 되어 있는 을은 갑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계속 지시를 하는 경우가 발생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갑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는 A를 만들어오라고 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을이 A가 아니고 B라고 이야기를 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B를 만들어가면 당연히 갑은 왜 A를 안 해왔냐고 하고
저는 당연히 을이 B라고 해서 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때 을은 핑계 대지 말고 제대로 파악하라고 저에게 이야기를 하면 저 역시 기분이 안 좋아져서
서로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죠.
이런 식의 패턴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제가 정리한 내용은 계속 수정이 많아지게 되었고
시간만 자꾸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돌아가는 업무 패턴이 가장 크게 불편했고
이런 부분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직도 이렇게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게 2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지금은 상주가 아닌 예전처럼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1주일에 2~3번 정도는 왔다 갔다를 하고 있지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보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IT 업계에서 처음으로 하는 고객사 내 상주이다 보니
새로운 경험이기는 하지만
상주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