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의 잉어 한 마리를 바라본다.
유유자적, 연못 속을 맴도는
저것은 잉어.
시간의 물살을 가르며
자기의 시간을 헤매는
저것은 잉어인가, 잉여인가.
쓰고 남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잉여라고 부르는 그것은
우리가 어딘가 숨겨놓은 시간들이다.
잉어가 자기의 시간 속을 헤매며 찾는 것은
새로운 시간이다.
잉어는 연못 속에서 자기의 시간을 바라본다.
바다를 꿈꾸며 연못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 잉어는
오늘도 찾는다
새로운 시간의 접점을
그러니, 그대
그 시간들을, 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잉여라 부르지마라.
다만 그는 찾고 있을 뿐이다.
자기의 시간 속을 헤매며
다만 그는 탐험가,
다만 그는 자기의 모서리를 깨부수는 자
그것을 찢고 그가 나올 때
우리는 그를 더 이상 잉여라 부르지 않는다.
결과에 과정이 숨어 있듯
다만 숨겨져 있을 뿐이다.
그의 모서리도,
그의 미래도,
그가 찢고 나올 그 시간의 미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