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꽃인데 피지 않는다
꽃은 꽃인데 이미 시들었다
밤이 새도록 이슬을 매달고 있었지
혹독한 계절을 건너 너는 이곳에 피었다
삶은 무겁고
태양은 머리 위에 있지만
너무 멀기만 해
너는 날카로운 빛에
허리가 꺾인다
빛에 의해 형체 없이 사라질 너는
그걸 알면서도
한 송이 백합이 되어
온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칼바람 속에서도
빛을 찾는 너는
빛 속에서 눈부시게 녹아
사라진다
땅으로 스며들어
눈물로 피어날
한 송이 눈꽃이여.
너는 한 번도
봄을 꿈꾸지 못했구나
너는 다만
이 혹독한 계절 위에
기다림으로
피었구나
그러니 잊혀지는 것은 너의 일
그대로 사라진다 해도
서럽지 않을 일
겨울 속에서 기다림으로 피는 일
그러니 흔적도 없이 사라질 자유 또한
온전한 너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