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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Mar 07. 2017

박사가 사랑한 수식

우리를 이어주는 기억

감독 고이즈미 타카시

출연 테라오 아키라, 후카츠 에리, 다케이 아카시


사람은 기억으로 이루어진 집합체


예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가족들은 그 사람 곁에 있더라도 그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태인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사람의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결국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끈인지도 모른다. 그 끈이 어느날 끊어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영화는 그 기억이 어느날 끊어져버린 사람의 이야기이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사실 조금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이 책의 독특한 설정에 매료되어 (80분 밖에 기억을 유지시키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한다는 것)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 한동안 쭉 잊고 지내다가, 한 친구와 서로 괜찮은 책을 추천해주기를 했는데, 그때 그 친구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내게 강력 추천했었다.
 
전에 흥미도 가졌던 데다가, 그 친구가 강력 추천한다고 하니 다시 읽어볼 마음이 생겼지만, 아무래도 수학 공식과 관련된 내용이 나올 것 같은 제목인지라 선뜻 내키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한번씩 들춰보다가 결국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사곤 했었다. 그렇게 몇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언젠가는 읽어보아야 할, 하지만, 도전하기는 어려운 책으로 여기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책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면,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나의 인연은 아무래도 필연 쪽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친구와 즐겨 찾던 북 카페에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보고 말았다. 별다르게 눈이 가는 책도 없고 해서, 이거나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 나는 책꽂이에서 그 책을 뽑아 들고 테이블로 왔다. 그리고, 그 책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나는 한달음에 책을 읽어내려갔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북 카페에서는 그 책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 카페를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이 책을 샀다. 도저히,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이 책을 내 인생의 베스트로 정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책들 중 이 책은 최고였다.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을지...
 
허구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 나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치 실존인물인 것처럼 생각되었고 그들의 움직임과 박사의 복장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마치 영화를 보듯 (나는 독서를 할때면 흔히 이런 상태가 되곤 한다) 펼쳐져 쉽게 그 영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가, 한동안 다른 책은 읽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한동안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이 준 여운과 감동은 (지금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로)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그 여파가 컸다.
 
그래서 이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어떻게 다를까?'하는 부분이었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결과는? 뭐 그닥 나쁘진 않았지만 메모지가 양복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걸  상상했던 나로서는 박사의 양복에 드문 드문 달려 있는 메모지는 조금 실망스러운 것이었고, 박사의 얼굴 또한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서 (게다가 담배도 대놓고 피우고) 조금 별로였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를 계속보다 보니, 캐스팅이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았고. 아들 루트의 모습은...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조금 덜 귀여웠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원작 소설과 별다르지 않은 내용에다가 에피소드가 별로 없어서 조금 심심했다. 게다가, 생일 케이크 초를 사러 간 루트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서 박사가 걱정하고 이런 부분들이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아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무래도 영화보다 소설 쪽이 감동이 더 컸던 것 같고. 더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원작 소설과 달랐던 부분도 있었다.  주인공은 파출부로 어느날, 한 수학자의 집에 파출부로 가게 된다. 이 수학자는 대학의 교수로 일하다가,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해 80분 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기억이 80분 밖에 유지되지 않게된 이후, 형이 죽고 미망인이 되어 혼자 사는 형수네 집에 얹혀 살게 되는데 별채에 혼자 사는 형수와 박사는 서로 거의 왕래가 없다.
  
과거에 이 둘은 서로 사랑했던 사이인 것처럼 소설 속에서 그려져 있는데, 영화도 이와 다르지 않지만 - 영화에서는 조금 더 뭐랄까... 노골적으로 드러냈달까. 게다가 원작에는 없는 부분인, 미망인이 박사의 아이를 가졌었고 -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아이를 낙태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걸 통해 박사가 루트에게 보이는 각별한 애정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별로였다.  두 사람이 과거에 연모하는 사이였다는 것을 영상으로만 드러내야 하니까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원작자가 일부러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부분을 파헤치듯 해놓은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은근해서 더 좋았던 부분도 있었는데 말이다.  또 하나 달랐던 것은 타이거스의 팬으로 야구를 좋아하지만, 야구 경기장에는 가본 적이 없는 박사가, 루트와 주인공(루트의 어머니)과 함께 처음으로 박사가 야구 경기장에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루트의 시합을 보러 가는 것으로 나와서 약간 실망했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하지만 영화라서 더 좋았던 부분은, 루트의 머리를 루트의 엄마가 살짝 때리는 부분이나 또 학교 선생님이 된 루트가 영화 속에서 화자로 변신하여 박사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특별한 인연을 수학공식을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설정 같은 것은 좋았던 것 같다. 보면서, 저런 수학 선생님이 있다면 수학 공부가 참 쉽고 좋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럼 이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간략히 살펴보자.


박사의 형수


죽은 형의 부인으로 박사의 형이 죽고 미망인이 되어 혼자 살다가 박사가 교통 사고를 당해 80분 밖에 기억을 유지시키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박사를 집으로 데리고 와 돌본다. 그러나 실상은 별채에 기거하면서 모습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간간히, 커튼 틈으로 루트와 박사, 그리고 루트의 어머니(파출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질투심을 느낀다.
 
교통 사고로 다리를 다쳐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박사와는 과거 사랑하는 사이로 박사의 아이까지 가졌었으나, 세상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아이를 낙태했다. 그 이후,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이후 박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박사


박사는 전직 대학 교수로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친 수학자. 형의 도움으로 대학교까지 가서 수학자가 되었으나 교통 사고를 당해 80분 밖에 기억을 유지시키지 못하게 된다.  형의 아내와는 총각 시절부터 알던 사이로 연모하는 마음을 키웠으나, 형과 형수가 결혼을 해버려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로 혼자 살았다. 집에 파출부로 온 여자와, 그녀의 아들과 나이와 시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며 그녀의 아들에게 루트라는 별명까지 붙여준다.
 
 
루트의 어머니


소설 속에서는 화자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아들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다 -_-;; 파출부로, 젊은 나이에 미혼모가 되어 혼자 아이를 낳아 키웠다. 생활력 강하고, 마음씨도 따뜻한 착한 가정주부로 파출부 일에 프로정신을 가지고 임한다. 박사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끼며, 나이를 초월한 순수한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루트.  영화 속에서는 화자로 등장. 박사와 어머니, 그리고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머리가 평평하다고 해서, 박사로부터 루트라는 별명을 얻는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꼬마로, 박사를 잘 따른다. 박사의 영향을 받은 덕분(?)으로 커서 수학 선생님이 되는 루트. (잘 컸네. 소설에도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는 부분이 나온다.)


박사가 이 아이에게 루트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박사의 말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리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박사가 유난히 사랑하고 좋아했던 수식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나이를 초월한 세 사람의 우정, 인간애가 따뜻하게 담겨 미소 짓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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