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May 01. 2017

가벼운 잠

가볍게 잠들 수 없는 날들의 기록

사실 이 영화는 제목과 달리 그리 가볍게 잠 들지 못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잠'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인 동시에, 일상에서 잠시나마 탈출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직 우리는 꿈꾸기 위해서, 또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잠을 잔다.
 
매일 우리가 열고 닫는 것은, 문이나 입, 눈 이외에도 잠이 있다. 하루의 시작이나 끝에는 언제나 '잠'이 있다.  잠을 열고 닫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많은 이들이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눕는다.  열린에게 잠을 자는 시간은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열린에게 잠들 수 없는 날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영화 가벼운 잠

가볍게 잠들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 열린은 언제나 가볍게 잠들고 싶어하지만,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해도 잠들 수가 없다.  열여섯이라는 나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열린의 유일한 취미는 깨어 있을 때 마주하는 모든 풍경들을 카메라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뺑소니 사고로 부모를 잃고, 실제적으로 가장이 되어 어린 여동생을 돌보아야 하는 열린은 다른 친구들처럼 '좋아하는 남학생' 때문에 속을 끓일 여유도, 모든 것을 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노래를 부를 시간도 없다. 이 영화는 그러한 열린의 현실을 노래방에서 쿵쿵 뛰며 노는 열린의 친구들과, 돈이 없어 유골함만 가져다 묻은 아버지의 무덤 위에서 콩콩 뛰는 열린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 가벼운 잠


고작 열여섯. 그녀도 누군가의 품에 기대어 울거나 위로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돌봐주던 어른들도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진 않았고, 오히려 생계를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열린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용하려 들 뿐이다.  가족이라곤 그녀가 돌보아야 할 어린 동생 뿐.
 
기대어 울고 싶은 그녀는, 그러나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속으로만 울음을 삼켜야 했고 - 터져나오는 울음조차도 남들이 없는 곳에서,
그것도 남의 눈치를 보아가며 터뜨렸다.
 
병원비를 낼 돈이 없어 장례절차를 끝마칠 수 없었던 열린은 엄마의 시신을 병원에 남겨두고, 2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시신을 되찾기 위해 병원 측에 간절하게 부탁을 해보지만 기증된 시신으로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병원측 관계자는 열린에게 어머니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는다. 열린은 이날, 아무도 없는 대학 병원 벤치에 앉아 펑펑 소리내어 울었다. 그것도 누가 오지나 않나, 힐끔 힐끔 눈치를 봐가면서.
 
그렇게 우는 열린을 보는 것이 참 힘들었다. 아팠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열린처럼 울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기에. 돈이 없어 약자가 된 그들의 모습이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열린의 눈물은 더 아프게 내 마음에 와서 박혔다.
 
열린은 주고에게 자신이 쿨쿨 자고 있을 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열린도 누군가가 잠 자는 자신을 지켜보면서 '자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다시 한번 말해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자는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우리 열린이는 자는 것도 예쁘다'고 말했던 엄마처럼.
 
그녀도 자신을 보살펴줄 누군가가 간절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달라는 동생에게 '나도 업어달라'며  투정을 부리듯 말하는 열린의 마음이 이해도 가고, 왠지 눈물이 글썽거려질만큼 슬프기도 했던 것 같다.
 
'나 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우리'가 되자. 학창시절 1년 내내 걸려 있던 급훈. 아이들은 지겹다며 난리를 쳤지만,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우리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그 담임 선생님은 2학기에도 그 급훈을 내걸었을 것이다.  그 오래된 급훈이 어쩐지 명치 끝을 아리게 하는, 그런 영화였다. 난 지금 '우리'를 잃어버린 채 나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좀 부끄럽다.
 



이전 01화 헤어질 결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