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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n 08. 2023

헤어질 결심

안개처럼 눈을 가리는 사랑

어떤 헤어짐은 사랑의 증거와 고백이 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영화를 보기 전에 책으로 출간된 각본집을 먼저 읽었다. 그래서 사실 영화를 보는 재미는 확실히 좀 덜한 느낌은 없지 않아 있었지만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좋았던 영화이기도 했다. ​


송서래는 자기의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여자였던 것 같다. 자기 것, 자기 편이 없었던 여자. (이는 송서래가 자신의 산이라며 호미산에 보이는 애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타국에 있는 잘 모르는 산을 그리워할 정도로 송서래는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두 사람이 같이 수갑을 차고 있었던 장면은 해준이 송서래와 기꺼이 공범이 된 듯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렇게라도 묶여 있고 싶은 두 사람의 마음 같은 것들도 그 장면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서래가 사건의 범인임을 직감하면서도 모른척 눈 감아주는 해준의 모습에서 서래는 기꺼이 해준이 자신과 공범이 되어주었다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카메라 구도였다. 정면으로 잡은 장면도 있지만 대체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옆모습으로 잡거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부감으로 잡은 장면이 많은 영화였다. 이것은 관객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게 하려는 (조금은 거리를 두고) 영화적인 장치처럼 느껴졌다. ​


또 두 사람이 취조실에서 마주 앉아 있을 때는 실제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해준의 뒤통수가 보이도록 해서 서래의 얼굴을 보이도록 카메라 움직임을 가져간 것이 인상 깊었다. ​


또 서래가 기도수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올 때 해준의 뒤로 극중에서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온 기도수가 문을 닫는 장면으로 컷 편집 없이 자연스런 장면 전환을 시도하며 회상 장면이 나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역시 작가주의 감독의 영화답게 미장센이 잘 살아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고 싶었지만 헤어질 수 없어 이포로 돌아온 서래는 결국 그를 지키기 위해 만조 시간에 이포 바닷가를 찾는다. 그리고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 스스로 몸을 묻는다. 살인 사건의 범인이자 증거인 자신을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서래가 마지막에 해준에게 해준의 음성이 담긴 핸드폰을 준 것도, 끝내 ‘우리 일’을 모두 마음에 담은채 모래 구덩이를 파 바다로 들어가 버린 일도.


미결 사건이 되어서라도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은 마음, 죽음으로 그를 지키고 끝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고 싶은 마음. 안개처럼 해준의 시야를 가리고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서래의 ‘헤어질 결심’까지 모두다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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