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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l 10. 2017

여행자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자들의 이야기

우니 르콩트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 <여행자>는 우니 르콩트 감독이 9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 여성이라는 점에서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낸 느낌을 준다.
 
사실 이름만 봤을 때는 외국 감독이라고 생각했으나 영화를 보면서 혹시 감독이 외국으로 입양되었던 한국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까 한국계  프랑스인으로 9살때 입양을 갔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두번 정도 울었는데,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슬픈 느낌을 받았다. (어떤 장면에서 그랬는지는 천천히 이야기하겠다)
 

영화 여행자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주인공인 진희 역을 맡은 김새론이다. 김새론은 영화 아저씨에서 처음 봤는데, 아역이지만 연기를 참 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단순히 잘한다는 것보다 "연기 내공"이 있는 아역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아저씨를 보고 나서 김새론의 연기가 별로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던데, 아저씨의 김새론이 아닌 여행자의 김새론을 본다면 아마 김새론에 대한 생각이 180도 달라질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김새론은 그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이 영화 속에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배우라고는 해도 김새론 양이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들도 꽤 많았던 영화가 아닐까 싶은데, 이 영화에 출연할 당시 어린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맡은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낸 것 같다.


자, 김새론 예찬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터 영화 얘기를 좀 해보자.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은 시골 마을의 한 보육원이다. 수녀들이 있는 이 보육원에 진희라는 아이가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희는 아빠(설경구)와 함께 이 보육원을 찾는다. 제목이 여행자인 것은, 진희의 아빠가 진희에게 여행을 가자고 하면서, 진희를 보육원에 데려오기 때문이다.
 

영화 여행자


언젠가 돌아올 것이란 거짓된 약속을 남기고 진희의 아빠는 떠나고, 진희는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린다. 진희는 아빠가 자신을 버린 것이란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 여행자

진희에게 보육원 생활은 낯설고 두렵기만 한 것이다. 진희는 보육원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보육원을 떠날 수가 없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진희는 자신을 여행자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 보육원을 떠날 것이라고, 자신은 아빠와 여행을 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원장 선생은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고 싶다고, 아빠를 만나야만 한다고 말하는 진희를 대신해 진희가 살던 동네를 다녀온다. 그리고 너무나도 잔인하게 말한다.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너희 아빠는 다시는 안 온다고. 너희 가족은 살던 집을 떠나 이사간지 오래고 어디로 이사갔는지도 모른다고.넌 곧 새로운 가족을 만날 거라고. 아빠는 너를 버린 거라고."
 

영화 여행자



진희는 그 말을 듣고 식사 시간에도 멍하니 앉아 있다. 충격을 받은 얼굴로. 그리고 성당을 가야하는 주일날. 몸이 아프다고 말하고, 성당에 가지 않는다. 텅 빈 보육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진희는 보육원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흙을 파기 시작한다. 흙을 파서 자신이 누울 자리를 만드는 진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쓰리고 아팠다.  


내가 울었던 장면은 이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 전에 보모에게 방망이를 받아들고 이불을 치던 모습. 이불을 치면서 눈물을 쏟던 장면. 그 장면을 보면서도 울었다. 이 작은 아이의 가슴에 응어리진 아픔 같은 것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여행자


진희는 흙을 판 뒤 그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흙을 그러모아 자신의 몸을 덮기 시작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아이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거구나." 그 생각을 하자 눈물이 나왔다. 아직 어린 아이가 자신의 삶을 끝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정도로 저 아이는 상처 받은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앞에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했던 것이다. 진희는 얼굴 끝까지 흙을 뒤집어 쓴다. 그러고 한참을 누워 있던 진희는 다시 흙을 얼굴에서 털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진희는 입양이 된다. 외국인 부부에게. 처음에 아빠가 사줬던 고운 옷과 새 신발을 신고. 진희는 떠나고 싶지 않았던 고국을 떠난다. 어딘지도 모를 낯선 땅에 내려진 진희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이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끝나기 전에 진희는 노래를 부른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라는 노래를.


영화 여행자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세월이 흘러가면은 그때서 뉘우칠거야."
 

이 노래는 원래 사랑했던 사람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지만, 진희의 상황에서 불려지는 이 노래는 자신을 버린 아빠에게 진희가 하고 싶었던 말을 울음대신 터뜨리는 노래로 느껴질 정도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이 노래는 이 영화의 초반에도 불리워진다. 진희는 아빠에게 버림 받기 전 이 노래를 너무나도 밝은 얼굴로 부른다. 누가 부르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영화 마지막에서 진희는 보모가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자 망설이다가 이 노래를 부른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 이 노래가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진희가 하지 못한 말. 해외로 입양된 입양아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진희의 깊은 감정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고 원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영화 여행자

어디로 입양을 가든, 입양아들의 삶은 여행 같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는. 여행자의 삶.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도는 여행자의 삶. 여행자라는 제목은 그래서 참 아프고,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가슴을 눈물로 적신다. 한국이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참 부끄러운 말이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그러기에 더욱 아프다. 더는 이런 아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런 생각을 내내 했다.  한 생명을 잉태하고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건, 많은 책임이 따른다.


제대로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낳지 말아야 한다.  책임질 자신도 없이 자신의 아이를 이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단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어린 생명에 대해. 그 생명이 평생 지니고 갈 상처 투성이의 인생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무책임과 무관심 때문에 여행자로서 이 땅을 떠나는지...그리고 여행자로서 평생을 타국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쓰리고 아플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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