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4일(2일째)-명예의 거리, 할리우드 사인, 천문대
베벌리힐스를 나와 LA의 상징과 같은 명예의 거리(Wali of Fame) 거리로 갔다. 가는 길에 경쟁하듯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 홍보 대형 포스터들이 인상적이었다. 도착한 거리엔 수많은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했다. TCL 차이니즈 극장이 행사 준비 때문에 안전바가 설치돼있어서 유명한 스타의 손자국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영화인 스타워즈의 R2D2와 3PO의 발자국은 만났다. 대신 바닥에 여러 스타들의 이름을 읽어보고 거리를 걸어봤다. 차이니즈 극장에서 시작해 2km에 달하는 거리인데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 별 모양의 대리석에 박혀있었다. 밑을 걸어가며 유명인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미국인들이야 다 알겠지만 우리는 주로 유명한 영화배우 위주로 찾아봤다. 거리에는 각종 캐릭터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스파이더맨, 스타워즈, 아이언맨, 헐크 등이 있었는데 자꾸 사진 찍자고 들이대는 바람에 빠져나오기가 조금 난감했었다. 그 영화 캐릭터를 좋아하고 추억을 남기고자 한다면 같이 사진을 찍어도 상관없지만 우린 그럴 생각이 없어서 아이 손을 꼭 쥐고 거리를 걸어보고는 점심 먹기 위해 나왔다.
점심은 미 서부에서만 영업한다는 근처 인 앤 아웃 버거 가게에 가서 대망의 버거, 감자튀김, 밀크셰이크를 맛봤다. 사람들이 엄청 많고 한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주문할 때 아이가 처음으로 약소하지만 주문을 직접 해보았다. 이걸 놓치지 않고 나는 영상으로 찍어놨다. 매장 안에는 전혀 자리가 없어서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고 같이 둘러앉아 맛있게 버거를 먹었다.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자동차 주문하러 차들도 기나긴 행렬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특이하게 할라피뇨 피클을 먹을 수 있게 해 놨다. 어머니는 그게 입맛에 맞으셨는지 잘 드셨고 아이도 버거를 잘 먹었다. 음료는 주문하면 컵을 주었다. 그래서 무제한으로 탄산을 먹을 수 있는데 콜라, 환타, 사이다만 있는 게 아니라 제로 콜라, 루트 비어 등 다른 맛도 많이 있어서 탄산의 천국임을 실감했다. 이때 아이에게 버거를 한 입 먹고, 감자튀김을 밀크셰이크에 찍어 먹는 맛을 알려줬다. 그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때 배운 것으로 그 뒤에도 자주 이런 식으로 아이는 먹었다.
식사 후 다시 명예의 거리로 들어섰는데 그 유명한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극장이 있어서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멀게만 느껴졌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번에 우리나라 영화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타는 어머어마한 쾌거를 이룩해 자랑스러웠고 앞으로도 이 돌비극장에서 우리나라 영화를 만나면 좋겠다. 이곳 마트에 있는 주차타워는 물건 구입을 하면 시간이 2시간 무료인데 시간에 가까워져서 서두르는데 아이가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더니 먹고 싶다고 해서 가게에 들어가서 콘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스쿱으로 아이스크림을 담는 점원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나의 마음은 초조해져만 갔다. 아이스크림을 사고 주차장으로 가서 서둘러 결제를 했다. 그런데 아뿔싸 1분 차이로 5달러를 더 결제하게 되었다. 낯선 경험에 대한 기회비용이라 생각되었지만 돈이 아까운 건 사실이었다.
그다음 목적지는 할리우드 사인이었다. LA 하면 떠오르는 곳 중 하나인 이곳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 찾아가는데 계속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가서 나는 운전하면서 내내 긴장되었다. 좁은 1차선이라 반대편에서 언제 차가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산길 옆에도 좋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저 멀리 사인이 보일 때마다 무척 신기하기는 했다. 도착해서 주차하는데 경사진 면에 주차를 했다가 갑자기 후진이 잘 안돼서 앞에 있는 차를 칠 것 같아 엄청 긴장하고 놀라긴 했는데 후진 액셀을 밟아 뒤로 빼고 주차를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렇게 어렵게 도착한 곳에서 잠깐 쉬면서 기념사진도 여러 장 남겼다. LA의 명물인 이 사인은 9개의 흰 고딕식 대문자로 HOLLYWOOD라고 적혀 있는데, 지금처럼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본래는 부동산 회사 광고였다고 한다. 이제는 미국 영화 산업의 메카 할리우드를 알리는 상징으로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었다. TV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크게 보였었는데 우리가 있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잘 보이지만 그렇게 크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가까이 가서 보면 굉장히 컸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퇴근 시간 전이라 그런지 길가에 주차할 곳도 넉넉했고 공원에는 사람도 많지 않아 원하는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다음은 영화 '라라랜드'의 마지막 도착지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인 '라라랜드'에서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가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고 싹튼 곳이 이곳이고 시내를 조망할 수 있기에 가보기로 했다. 퇴근시간은 가까스로 피해 30분 정도 걸려서 여유 있게 일몰 전에 도착했다. 우린 천문대 앞 주차장까지 안 가고 1마일 떨어진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가기로 했다. 산을 타고 올라가는데 재미교포 할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우리를 LA사는 사람으로 착각하면서 반갑게 말씀을 나누셨다. 한국인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천문대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가파르고 가깝지는 않았지만 씩씩하고 즐겁게 길을 잘 걸어갔다. 아내를 닮아서 그런지 자연 풍경 속에서 거닐 거나 보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웠다. 입고 있던 패딩을 벗을 정도로 땀도 나고 얼굴의 온도는 계속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서 본 천문대는 영화 '라라랜드'에 나온 그대로였다. 주인공이었던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모습이 아련하게 지나가는 듯했다. 천문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그들과 함께 기다리며 아름답게 저무는 일몰도 보고 안에 들어가 구경을 했다. 밖이 깜깜해져 야경도 보았다. 고층 빌딩이 즐비하는 대신에 넓고 끝없이 펼쳐진 LA 시내의 밤거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네온사인, 건물들의 불빛에 반짝거려 밤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거렸다. 비성수기 평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곤하나 꽤 많은 이들과 LA풍경을 감상했다. 트레킹 코스로 내려오는데 그 길이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어두컴컴했지만 4명이 같이 조잘거리며 조심조심 잘 내려와 집으로 왔다. 아이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져 기절한 정도로 잠을 잤다.
하루 종일 밖에서 보고 걷고 하느라 다들 지쳤지만 나는 오자마자 저녁상을 차렸다. 가는 면으로 만든 토마토 파스타, 카프레제 샐러드, 닭다리 스테이크였다. 어제 너무 열악한 장비로 최선을 다했던 나는 닭다리 익히는 게 너무 오래 걸려서 요리하기 전에 발골을 다 한 다음 살만 발라내 구웠고 파스타도 소스는 사놨기에 시판 소스를 활용해 바로 만들어 저녁식사를 했다. 다소 빈약해 보여도 열심히 하루를 보낸 우리에게는 꿀맛 같은 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 아내는 이내 잠들고 아이는 만화를 조금 보다가 어머니와 잠들었다. 이렇게 이틀째 밤이 저물었다. 이틀 모두 알차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써서 4일 이상 여행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