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6일(4일째)-디즈니 콘서트 홀, 더 브로드
LA를 진정 마지막으로 즐길 수 있는 날이다. 굵직굵직한 것들은 일단 보았기 때문에 여유롭게 LA 시내를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은 날씨가 비가 오고 흐리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런 예보가 있을 때 사실 당황했던 것이 이곳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다소 건조한 기후에 속한다. 1년에 300일 이상이 맑은 날이라서 비 오는 날씨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하필이면 우리 여행 다닐 때에 비를 만나는지 생각을 했었다. 그러함 바람을 날씨가 알았는지 전날 밤 우리가 자고 있을 때 한 차례 빗줄기가 이곳을 훑고 지나갔고 일어나 아침이 되었을 때에는 잡티 하나 없는 맑은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날씨까지 우리의 여행길을 축복해주는 듯했다.
먼저 나와 아내는 어제보다는 느긋하게 7시에 일어나서 근처 빨래방에서 삼 일간 쌓인 빨래를 끝냈다. 처음에 숙소 안에 세탁기가 있다고 해서 이곳을 정한 거였는데 이곳 세탁기도 동전을 넣어야 하는 구조였다. 그때 동전이 없던 우리는 근처 빨래방을 검색해 그곳에서 빨래와 건조까지 마치기로 했다. 바구니 잔뜩 빨래를 담아 10분 정도 걸어서 빨래방에 도착했다. 빨래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거리를 걷자니 꼭 이곳에 사는 사람 같았다. 다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우리 외에 1명만 빨래를 하고 있었다. 지폐로 동전을 교환하고 이제는 유럽에서 몇 번 해봐서 그런지 능숙하게 빨래와 건조까지 마쳤다. 장기간 여행을 다닐 때에는 가루 세제 작은 것을 사서 들고 다니자고 했다. 세제가 없으니 세제까지 구입을 해야 했다. 잠시 기다리는 틈을 타서 지금까지 찍은 사진 구경도 하고 아내와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뽀송뽀송해진 빨랫감을 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은 숙소에서 해 먹지 않고 미국 아침 식사를 만나보기 위해 근처 식당에 가서 먹기로 했다. 이곳이 주거 지역이다 보니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이 몇 곳 있었다.
아침 식사는 숙소 바로 가까운 식당에서 먹었다. 미국의 전형적인 가정식 식당이면서 히스패닉 요리를 주로 하는 곳 같았다. 주인이나 종업원도 이민 온 히스패닉으로 보였는데 일단 현지에서 잘 먹는 음식을 먹어보기로 해서 메뉴 추천을 받아 주문을 했다. 그래서 오믈렛, 멕시코 토르티야 쌈, 으깬 감자, 베이컨 구이, 와플까지 한상 가득 시켜 먹었다. 커피를 부족하지 않게 끊임없이 따라주셔서 배부르게 먹었다. 비싼지 모르고 시킨 과일주스 2개를 포함해서 6만 원 가까이 나왔고 팁도 몇 달러 놓고 나왔다. 진정한 미국식 아침식사였겠지만 설마 미국인들이 매일 이렇게 먹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매일 이렇게 먹는다면 아마 혈관이 일찍 막힐 것 같았다.
디즈니 콘서트 홀 투어 때문에 첫날 갔던 다운타운에 또 갔다.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던 그 주차장이 가까워 다시 주차를 한 후 걸어서 콘서트 홀까지 갔다. 월트 디즈니를 기리기 위해 건축되었는데 아내였던 릴리안 디즈니가 LA에 자금을 기증하여 2003년에 완공되었다. 건물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유려한 곡선으로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스틸이 멋들어져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모습이다. 이 모습은 릴리안 디즈니가 장미를 좋아하여 그러한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반사로 인해 눈이 부시고 온도 상승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특이한 모습으로 안에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바깥에서 사진은 찍는 명소가 되었다.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주 공연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겉모습이 멋진 디즈니 콘서트 홀 앞에서 사진도 찍다가 11시 투어 시간에 맞춰 갔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길래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마침 공연 리허설 시간이라 오전투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창이 열리지 않아 가이드 북 시간을 보고 갔는데 이런 변수가 생겼다. 투어는 오후에 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가볼 곳이 있어서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다 혹시에 하는 마음에 바로 옆 더 브로드 미술관으로 향했다.
더 브로드는 요즘 가장 핫한 LA의 예술 공간으로 현대미술관이다. 가이드 북에는 예약 필수라고 했지만 혹시 몰라서 가보기로 했는데 다행히도 입장이 가능했다. 평일 오전이라 한산해서 그랬나 보다. 예약도 안 한 우리에게 무료로 개방된 착한 현대미술관에 고마움을 느끼며 입장을 했다. 감성과 탄성을 자아내는 현대 미술 전시품을 돌아보는 데 나는 신나게 보고 아이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했다. 그래서 내가 사진을 찍자 해도 시무룩하게 있었다. 이런 미술관이나 전시관은 아이와 함께 즐기기가 어려워서 참 여행 다닐 때 고민이 되었다. 우리 여행에 있어 시각적인 부분, 즉 유적을 보거나 공연을 구경하는 것도 있지만 이런 전시회도 정말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데 아이가 아직은 함께 하지 못하니 아쉬웠다. 앞으로 함께 즐길 날을 기대하면서 아이를 안고 최대한 같이 보면서 나왔다.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이를 위해 이곳까지 왔으니 엔젤스 플라이트를 한 번 더 타자고 했다. 저번에 나와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탔던 푸니쿨라가 연상되었는지 엔젤스 플라이트를 타면서 엄청 좋아했다. 푸니쿨라보다 훨씬 작고 거리도 짧았지만 경사진 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전차의 즐거움은 여전했나 보다. 엔젤스 플라이트에 가서 밑으로 내려갈 때 한 번 탔다. 내려서는 바로 그랜드 센트럴 마켓이 있어서 그 안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아내의 반짝 아이디어로 마트로 아이 장난감 원정을 떠나기로 했다. 근처 대형 쇼핑몰이 있어서 이 곳에서 저렴하게 아이 장난감을 하나 사자는 거였다. 아이는 물론 신나 해서 가고 싶어 했고 가까워서 차로 이동했다. 그런데 인터넷 지도에서 알려주는 것과 도로가 조금 달랐다. 인터넷에서는 양방향 도로라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일방통행이라서 몇 번을 돌고 돌았다. 어쨌든 일방통행 도로들을 헤치고 쇼핑몰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차 빌딩이 복잡해 헤매게 되니 운전하면서 조금 답답했으나 마트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이가 첫 번째로 사고 싶었던 장난감은 없었지만 두 번째로 사고 싶어 하던 장난감이 있어서 사고 나도 얻어서 우리나라보다 가격이 저렴한 레고를 하나 샀다. 점심으로는 1층에 있는 푸드코트에 가서 한식당이 있기에 어머니를 위한 매운 불고기 덮밥과 아이는 새우 덮밥, 나와 아내는 파이브 가이즈 햄버거로 각자 취향에 맞게 배를 채웠다. 어머니와 아이는 입맛에 맞는 듯 매우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고 특히 어머니는 오래간만에 한식을 먹게 되니 활기가 도는듯했다. 나와 아내가 주문한 햄버거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감자튀김에서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어마어마하게 많이 준 양이었고 또 한 번은 생각보다 짜서 살면서 처음으로 감자튀김을 남겼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