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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증후군

2020년 1월 17일(5일째)-코리아 타운, LA/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

by 오스칼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LA숙소

드넓은 서부를 가로지르는 로드 트립을 시작하는 날이다. 미국으로 여행 오기 전부터,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미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광활한 평원과 그곳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생각하면서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드디어 내 손으로 운전을 하여 떠나는 날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개운하고 청명한 LA의 하늘이 우리를 반겼다. 드높은 야자나무와 낮은 건물들, 따뜻한 날씨가 있는 LA를 떠나는 날이다. 비좁고 조금 열악했지만 4일간 우리를 잘 보듬어준 숙소와도 작별이다. 아침에 일어나 다들 부리나케 아침 식사를 하고 짐 정리를 하고 나왔다. 남아 있던 식빵은 구워 라즈베리 잼과 땅콩 잼을 발라 토스트를 만들어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숙소를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을 찍어 남기는데 아이도 사진 찍고 싶다고 본인이 앵글을 잡아 이리저리 찍어보았다.


미국에서 첫 주유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날이라 지나가는 길이 마침 코리아 타운 쪽이라서 그렇게 말로만 듣던 코리아 타운을 가보기로 해서 서둘러 출발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한 20분 정도 가자 여기저기 한글이 적힌 간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긴 여기는 굳이 코리아 타운이 아니어도 가끔 한글 간판이 보였다. 코리아 타운은 미드 월셔와 올림픽 블루바드 일대인데 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았던 LA 특성상 서울특별시 나성구라는 별명도 있다. 곳곳에 한국 음식점, PC방, 병원, 은행 등이 있었고 우리나라에 있는 프랜차이즈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과연 미국에서 뉴저지와 더불어 한인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도시다웠다.


코리아 타운을 눈에 잠깐 담고 주유를 하러 갔다. 라스베이거스까지는 자동차로 5시간 정도 달려야 하기에 가득 찬 상태로 차를 달려야 했다. 물론 고속도로 중간에 휴게소가 있었지만 처음 달리는 긴 거리였기에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나았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방식이어서 처음 해보는 주유에 긴장했다. 우리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먼저 매점 역할을 하는 카운터 건물에 가서 우리가 주유할 주유기 번호를 말하고 돈을 낸 다음 와서 넣는 방식이었다. 주유기를 넣고 기름을 넣는데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어서 아내에게 넣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기름이 절반 정도 있는 차에 30달러 주유를 하는데 28달러가 넘어가니까 기름이 가득 차서 결국 밖으로 흘러나왔다. 멈추고 정산을 해서 얼마간 남은 차액은 돌려받았다. 한국보다 저렴한 미국 석유 물가를 느낄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잠깐 휴식

기름이 가득 차서 배부른 자동차에 올라 그렇게 LA를 뒤로 하고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LA의 거리에 가득했던 야자수와 하늘 높은 곳에서 내리쬐었던 햇빛, 드넓은 도시의 스카이 라인, 여유로운 온도와 공기 등 모든 것이 그리울 것 같았다. 캘리포니아 증후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에는 외곽으로 나오느라 시간이 지났지만 황량한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 가득 펼쳐지기 시작했다. 들판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사막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곳이었다. 눈이 닿는 어느 곳이든지 그저 땅이었다. 그 땅 위에는 인간이 지은 건물이 단 하나도 없어서 태초 지구가 만들어졌다면 저러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풍경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살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라 운전하면서도 꿈길을 달리는 듯했다.


마음은 설레고 손은 힘주고

200km 정도 직진해 나오는 중간 정류장인 에디 월드 휴게소를 향해 2시간을 달렸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기까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하지만 광활한 벌거숭이산과 선인장 나무와 땅이 끊임없이 이어져 대중매체에서만 봐오던 미국 특유의 고속도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 놓은 휴게소에 도착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아침에 싸온 토스트와 휴게소에서 산 커피, 주스, 우유를 곁들여 식사를 하면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에 다시 200km가 넘는 거리를 3시간 동안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가장 길다는 목포에서 속초까지 간다 해도 6시간인데 여기는 그저 인접 도시라고 생각되는 곳을 가는 게 5시간 가까이 걸리니 미국이라는 나라의 크기가 실감 나지 않았다. 400km가 넘는 길을 달리는데 그저 직진, 직진이었다. 이렇게 오래 운전을 하면 지루할 법도 한데 5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런 운전기사와는 반대로 승객인 어머니, 아내, 아이는 내내 앉아있는 것이 지루한지 잠을 청하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풍경을 직접 두 눈으로 보며 그 사이를 운전대로 가로지르는데 팝송에서 나오던 미국 감성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서 운전하는 나는 아내에게 요청해 자주 듣던 80, 90년대 미국 팝 음악을 들으며 감회에 젖었다. 특히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와 토토의 'Stop Loving You'는 나를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물들게 했다.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번 여행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보물 같은 경험인 것 같다. 이때 처음으로 렌트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코리아 타운
라스베이거스를 향하여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외로운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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