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차를 몰고 간지 5시간 정도 지나 이제 한낮의 오후가 한풀 꺾일 때쯤 저 멀리 사막 위에 솟아오른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였다. 카지노와 호텔이 가득 찬 일명 죄악의 도시(Sin City)라고 불리는 이 곳은 근처에 있는 후버댐 개발로 인해 휴식시설이 있는 도시로 조성되기 시작해서 대재벌이었던 하워드 휴즈가 이곳에 있는 부동산을 매입해 고급스러운 오락, 도박 도시로 탈바꿈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도박의 도시로서 명성은 세계 최고지만 중국 마카오의 성장세에 밀려 지금은 마카오보다 수익이 적긴 하다. 그래도 라스베이거스하면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유흥 도시인 것은 틀림없다.
라스베이거스 거리에서 어머니와 아이
라스베이거스에 진입했을 때에는 아직 날이 밝은 오후라서 틈틈이 보이는 유명 호텔들을 통해서 이곳에 왔음을 실감했다. 메인 스트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리가 묵을 호텔에 도착했다. 적당한 가격이지만 스위트룸이라 방이 넓어서 널찍한 침대도 2개나 있었으며 무엇보다 주방이 훌륭했다. 순간 LA의 숙소 주방과 그곳에서 했던 요리들이 생각났다. 단 하루만 머물고 떠나는 거라 짧게 머무는 것이 너무 아쉽게 느껴졌다. 요리를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다 같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모노레일을 타고 라스베이거스 남쪽 스트립으로 향했다. 라스베이거스는 도시가 세로로 모노레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중심가로 갈 때 이용하기 편리했다. 저물어가는 햇살을 받으며 메인 스트립에 내렸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보기 위해 코카콜라와 m&m스토어를 둘러봤다. 미국 안에서는 커녕 전 세계에 3~5개 정도만 있는 매장들인데 꼭 가봐야 하는 쇼핑 장소라고 해서 방문했다. 코카콜라 매장에서 놀랐던 것은 수많은 패션, 액세서리 등 콘텐츠로 만들어진 작품보다는 종류별로 먹을 수 있는 코카콜라 음료 세트였다. 사람들이 각종 맛과 톡 쏘는 맛으로 무장한 탄산들을 시음하듯이 마셔보는 게 너무 이색적이고 웃겼다. m&m매장에 가서는 아이가 눈이 휘둥그레 졌다. 각종 초콜릿을 보며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구경하길 반복했다. 나도 이런 초콜릿 매장은 처음이었기에 이렇게 많은 초콜릿으로 가득 찬 공간이 신기했다. 아이는 고심 끝에 초콜릿이 담긴 작은 둥근 케이스를 하나 샀다.
전 세계에 4개뿐이라는 허쉬 초콜릿 매장
그리고 스트립을 걸으며 각종 호텔들의 거대한 위용을 느꼈다. 소비와 환락이 쌓아 올린 위용에서 미국의 또 다른 면을 보았다. 거리는 각지에서 온 들뜬 사람들로 가득했다. 겨울에도 이 정도면 여름에는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안 갔다. 예전에 마카오를 갔을 때 날이 비 오고 안 좋아서 밖에서 못 즐겨서 아쉬웠는데 이곳은 걸어가기에 부담이 없었다. 날이 어두워 지자 우리는 꼭 봐야 한다는 무료 쇼 중에서 손꼽히는 벨라지오 호텔 분수 쇼를 한 곡 감상했다. 잔잔한 음악에 어우러져 높이까지 솟구치는 분수가 인상적이다. 호텔 안에 들어가 초콜릿 분수, 정원도 구경하고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무료 쇼인 미라지호텔 화산쇼도 30분을 기다려 구경했다. 규모는 작았지만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불꽃에 다들 넋 놓고 보았다.
이날 저녁은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나왔던 비닐에 담긴 매운 새우찜을 파는 가게에 갔다. 갔더니 이미 많은 손님들로 가게 안은 거의 만석이었다. 한국인도 간혹 있었지만 그보다 백인, 흑인 등 외국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조금 놀랍기는 했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아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매콤한 맛을 원한 어른들을 위해 매운 새우, 가재 찜을 주문했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다 새우와 가재를 손으로 잡고 뜯어먹고 있었다. 우리도 음식이 나오자 새우와 가재를 손으로 뜯어먹었다. 짜고 매운 소스와 밥이 있어서 오래간만에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한 끼였다. 그리고 분리수거는 전혀 하지 않고 일회용의 나라이기에 가능한 식사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식사 후에 그 테이블에 있는 전부를 모아서 버렸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까는 비닐부터 해서 모든 것이 일회용이었다. 일회용의 나라라는 것이 다시금 실감된 순간이었다. 식사 후 나온 거리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네온사인과 불빛과 소음으로 조용해질 줄 몰랐다. 어느 곳을 가도 술에 취한 사람과 웃음을 만날 것 같았다.
다들 잡고 뜯기 시작
이렇게 즐거움과 사람들과 놀거리가 가득한 밤거리를 걷다 호텔까지 돌아왔다. 이날은 도시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자동차만 탔으니 도착해서 저녁 시간대에만 도보로 2만 걸음 이상, 7km 정도를 걷느라 다들 발바닥이 고생했다. 아이도 정말 지쳤는지 가는 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다. 그래서 안아주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제는 목마 태워달라는 소리를 먼저 하지 않았다. 방에 들어와서는 "발에 힘을 다 썼어요!"라고 하며 침대에 그대로 늘어져 있었다. 카지노도 없고 번쩍거리지 않지만 편안한 이 방이 정겹다. 나는 넓은 욕조에서 아이와 물놀이를 했는데 전날에도 깊게 자지 못하고 장시간 운전에 계속 걸어서 그런지 엄청 피곤했다. 아이가 욕조만 보면 수영하고 싶다고 해서 하긴 했는데 너무 피곤했는지 하는 도중 내 얼굴은 피곤함에 벌게졌다. 아이와 물놀이를 끝내고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워 눈 감자마자 깊게 곯아떨어졌다. 어쨌든 라스베이거스의 하룻밤은 인상 깊었고 많이 걸었으며 또한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