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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과 지구의 주름, 그랜드 캐니언

2020년 1월 18일(6일째)-후버댐, 그랜드캐니언

by 오스칼

너무 좋았던 숙소를 정리하고 짐을 빼서 라스베이거스의 아침 거리를 달렸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경찰들의 범인 체포 현장을 목격했는데 우연히 본 것이지만 여태까지 살면서 그런 장면은 처음 봤기에 너무 놀랐다. 천천히 운전을 해서 일단 근처 도로 옆 쇼핑센터로 가서 먼저 주유를 했다. 두 번째라 주문과 버튼 누르고 주유하는 과정은 여유가 있었지만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주문했던 20달러에 또 기름이 넘치게 담겼다. 하지만 19.XX로 거의 성공했다. 새어 나오는 기름에 "아까운 석유."라 말하며 탄식이 나왔다. LA도 저렴했는데 네바다주는 기름값이 더 쌌다.


그리고 쇼핑센터 안에 있는 우리가 사랑하는 버거인 인 앤 아웃 버거로 아침을 먹었다. 매운 할라피뇨가 있고 신선한 재료에 적당한 가격으로 모두 잘 먹어서 벌써 두 번째 방문하고 있다. 사실 미국 음식 하면 대개 이런 버거 아니면 스테이크, 피자, 샌드위치, 바비큐 등이 생각나지 뭐랄까 진짜 식사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중에 인 앤 아웃 버거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꼭 방문해보고 싶고 동부로 넘어가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자는 생각이 컸다. 안에는 손님도 1명밖에 없어서 첫 방문 때보다 훨씬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친절한 점원이 직접 서빙도 해줬다. 아이는 "Can I get a sticker?" 해서 스티커 선물도 받았다. 아내는 그 사이 주문 스킬이 늘었는지 주문도 다르게 해서 맛있는 버거와 감자튀김을 우린 먹을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기 전에 먼저 스타벅스에 가서 라테와 아메리카노를 사서 여행길에 올랐다.


미국 맛집 버거, 인 앤 아웃

처음엔 근처에 있는 후버댐에 갔다. 후버댐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댐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불어닥친 대공황 시기에 콜로라도 강의 홍수 방지 차원겸 경제 활성화 일원으로 1935년부터 건설된 댐이다. 뉴딜 정책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댐으로 가는 길은 외길이라 구불구불 이어졌는데 아침 시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차량들이 있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주요 시설이라 그런가 검문검색을 엄격하게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내려서 차 트렁크도 보여주고 샅샅이 조사하기도 했다. 그걸 보자 조금 긴장되긴 했는데 우리는 아이도 있고 어머니도 있어서 누가 봐도 동양인 가족이었기에 염려하지는 않았다. 내 차례가 되자 창문을 내리고 인사를 했다. 경찰은 나에게 무기를 갖고 있거나 총이나 날카로운 물건이 있냐고 물어봤다. 긴장된 상황에서는 희한하게 귀가 더 잘 들렸다. 경찰관의 무미건조한 질문에 나는 당연히 없다고 했고 경찰은 뒷좌석에 탄 아이를 보더니 금방 가라고 보내줬다. 가는 길에 주차장이 있고 차들이 있길래 여기서 왠지 조망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듯 해 여기서 주차해 걷기로 했다. 과연 그 주차장은 댐까지 직접 가지 않고 맞은편 메모리얼 브리지에서 후버 댐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주차장이었다.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댐에 직접 가지 않고 건너편 다리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후버댐 전체 모습이 보였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댐의 크기와 깊이가 어마어마했다. 아내는 떨어질까 봐 무서워 다리 난간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무섭다고 했다. 아이는 신나서 다리 끝까지 건너가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는 다리 중간까지 가서 사진도 찍고 구경을 했다. 후버댐은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고 그 발전량은 상당해서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주에 공급된다. 워낙 대공사이기에 건설 당시 이야기도 많은데 5년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건설에 참여했고 어머어마한 콘크리트 양은 아직도 회자된다. 아직까지 콘크리트가 굳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이다. 본래 후버댐은 이름이 볼더댐으로 이 댐과 관련된 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볼더시티가 근처에 있었다. 나중에 후버 대통령을 기념해서 1947년에 이름이 후버댐으로 개칭되었다.


후버댐을 배경으로

후버댐에서 한 시간 반을 더 달렸다. 오늘은 끝없는 대지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풍경이었다. 신호등 하나 없이 오로지 길게 나있는 도로를 통해서 오늘의 메인이자, 세계 자연경관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그랜드 캐니언으로 갔다. 끝없이 평평한 대지위에 길게 늘어선 그랜드 캐니언이 보이는 순간 몇 백 km가 끝없이 이어진 듯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협곡의 길이는 400km가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영토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곳이 시야에 들어와도 그곳까지는 또 한참을 자동차로 달렸다. 그랜드 캐니언은 애리조나 주에 있는 거대한 협곡으로 세계 자연유산으로도 등록되었다. 콜로라도 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곳을 둘러싼 거대한 협곡은 도도하게 흐르는 시간의 역사를 붙잡아 퇴적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았기에 그랜드 캐니언을 최대한 볼 수 있을 만큼 꼼꼼하게 봐야 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1박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해서 시간을 아껴야만 했다. 유명한 포인트들이 있었지만 그곳까지는 가는 길이 멀어서 1박을 하거나 새벽에 갔다가 밤늦게 도착하는 일정으로 짜야만 했기에 고민하다가 다행히도 최근에 만들어진 새로운 포인트가 있어서 가기로 했다. 바로 스카이워크 관광지였다.


합성 같은 그랜드캐니언을 배경으로

우리는 그랜드 캐니언의 초입에 자리 잡은 스카이워크 관광지로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해 달리고 또 달렸다. 예전에는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에 개발이 되었는지 도로는 포장된 지 얼마 안돼 보였다. 하긴 한국에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이곳을 검색해봤을 때는 비포장 도로라고 나와있었다. 아무리 거리가 짧다한들 큰 도로에서 들어가는 것이 몇십 km의 길인데 비포장이라니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면서 그 생각을 하니 조금 아찔하기도 했다. 인디언 보호 구역이라서 실제로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운영도 이들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입장료는 꽤 비쌌다. 하지만 첫 번째 장소였던 이글 포인트 절벽 아래로 펼쳐진 광경은 굉장했다. 다들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이 태초의 품격을 간직한 자연의 모습에 찬탄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 갓 빗어낸 자연의 속살을 보는 듯한 신비로운 광경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자연경관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아내도 감탄을 금치 못했고 도시를 좋아하는 나도 이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층층이 쌓인 퇴적과 절벽이 꼭 CG 같아서 손을 뻗으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랜드 캐니언 점프

밤에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라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나의 빠른 상황 판단으로 우리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진을 빠르게 찍고 구아노 포인트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깊은 협곡의 콜로라도 강줄기가 여실히 보였고 언덕 정상에 올라 360도 파노라마로 캐니언을 감상했다. 아까 봤던 장소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웅장하면서 훼손되지 않은 지구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기에 다들 그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눈 안에 다 담고 싶어도 가득 차 넘칠 지경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저무는 해와 함께 다시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달렸다. 가는 도로 곳곳에는 소가 다닌다는 팻말이 있었는데 실제로 도로를 어슬렁 거리는 소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사막에 군집을 이루고 있는 조슈아 트리가 떠나가는 우리를 배웅하는 듯했다. 시간대가 바뀌어있을 정도로 먼 거리를 달려왔었지만 도로의 끝이 없을 것 같을 정도로 대륙의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다시 저녁 식사는 인 앤 아웃에서 버거를 세 번째로 먹고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차로 돌아보며 마무리했다. 서부 여행 6일 동안 잘 써먹은 렌터카도 반납하고 라스베이거스 국제공항인 매캐런 공항에 갔다. 다소 연착되어 자정 12시에 출발했는데 비행기에 타자마자 모두 깊은 잠을 잤다. 이렇게 미국 여행의 전반전이 마무리되고 휴식 타임으로 캐나다에 머물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에서 가장 사랑했던 음식
웅장한 후버댐
지구를 간직한 그랜드캐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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