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9일(7일째)-토론토 구시가지, 영 던다스 스퀘어
늦은 밤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드넓은 북미 대륙을 가로질러 겨울 왕국 캐나다 토론토를 향했다. 가는데 4시간 정도가 걸려서 밤새 비행기에 있게 되어서 오늘은 비행기가 우리의 호텔이 되었다. 자리가 다 제각각이라서 창가 쪽이었던 나는 옆자리에 어떤 백인 할아버지가 타셨는데 간단히 인사만 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푹 잤는지 한 번도 깨지 않고 내리 3시간을 잤다. 다소 개운한 느낌으로 눈을 떠보니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는 안 자고 계셨다. 둘 다 멀뚱히 있기 뭐해서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말을 걸어보았다. 그래서 도착하기 전에 옆자리 할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 알게 된 사실은 캐나다 사람이고 사는 곳은 몬트리올, 프랑스어를 꽤 잘한다는 것과 손녀가 있고 자식들 중 둘째는 양봉업자이고 근육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 관광차 놀러 왔다가 가는 것도 알게 되었다. 먼저 직업을 물어보길래 나의 직업을 밝히고 현재 가족 여행 중이라는 것과 우리의 여행 루트를 말씀드렸다. 그리고 미국 서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드렸다. 특히 내가 그랜드캐니언에서 점프하고 찍은 사진을 보고 놀라워하셨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띄엄띄엄 이야기를 했지만 의외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놀라웠다.
짧지만 깊게 푹 잔 나와는 달리 아이는 한창 잘 시간에 앉아서 자는걸 불편해했다. 어머니와 아내, 아이는 가운데 쪽 같은 라인에 탔는데 아이가 유독 잠을 잘 못 잤나 보다. 아무튼 밤 비행기 덕분에 북미대륙 서부에서 동부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정신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는데 밀려서 꽤 오래 기다려서 찾았다. 입국장 밖으로 나와보니 벌써 아침 8시가 훌쩍 넘었다. 올드 토론토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공항 안에서는 날씨가 추운지 몰랐는데 기차 창 밖을 바라본 풍경은 눈이 많이 내려서 그런지 설국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폭설이 내린 듯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아이는 졸려해서 계속 내가 안고 다니다가 기차에서는 만화 영화를 보면서 갔다. 토론토의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유니언역에 도착해서는 아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도착하자마자 캐나다에 자신의 영역을 남겼다. 밖에 나오니 캘리포니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불어오는 칼바람에 두 뺨이 얼얼하고 캐리어를 잡고 있는 손가락은 끊어질 듯 따갑게 느껴졌다. 이날 아침은 영하 10도 정도 되었는데 LA와 라스베이거스의 훈풍에 익숙해졌던 우리는 겨울을 잊고 지냈다가 이곳에 와서 한겨울의 매서움을 알게 되었다. 빌딩 사이로 찬바람이 불어오고 길바닥은 눈이 쌓여있는 도시라 다들 꽁꽁 싸매고 조심스럽게 숙소로 이동했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도록 시렸다. 한 가지 놀랐던 점은 보도블록 밑에서 새어 나오는 열기에 몸을 뉘이고 있는 노숙자들이 몇 있었다는 것이다. 토론토면 캐나다에서도 고소득에 속하는 도시이고 우리가 서있는 곳은 도시 중심지인데 가는 길마다 보여서 복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에는 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나오자마자 이런 광경이 눈 앞에 보이니 빈곤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했다. 가는 길에 이튼센터를 구경하듯 가로질러 갔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텔에 걸어서 도착해서는 아침 시간이었기에 일단 짐만 맡기고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어느 식당을 갈지 정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일단 나온 상황이라 고민이 조금 되었다. 날이 쌀쌀해 걸어가는 데 부담이 될 듯하여 블록을 돌자 사람들이 많은 식당이 있기에 내가 한번 들어가자고 했다. 들어가 보니 거의 캐나다 현지인에 여행객은 우리뿐인 듯했다. 주문을 하는데 간단한 음식을 이것저것 많이 물어봐서 낯설었다. 고기 굽기부터 빵은 흰 빵인지 갈색 빵인지, 달걀은 스크램블인지 써니사이드업인지 자세하게도 주문을 받았다. 식사가 나왔는데 1인분이 우리 1.5인분 이상이었다. 우리 4명은 캐나다 사람 2인분으로 배불리 식사를 했다. 식사하고 난 뒤 캐나다의 명물인 팀 홀튼 카페를 가기 위해 주변을 배회했다. 우리나라의 이디야, 빽다방같은 가성비 좋은 저렴한 가게라서 그런지 3곳을 들려서 겨우 자리가 있는 가게를 찾았다. 오전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앉아있었다. 카페에 가서 도넛 3개와 아내가 먹고 싶어 했던 더블더블, 블랙커피를 주문했다. 역시 하나에 2천 원 남짓의 저렴한 가격이었다. 아내와 어머니는 피곤했는지 테이블을 베개 삼아 한참을 졸고 아이는 아내 핸드폰으로 만화 영화, 나는 핸드폰으로 여행 사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작은 사각의 핸드폰 화면에 빠져있으니 어느 순간에 여기가 캐나다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얼떨떨하기도 했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피곤할 법도 했다.
오후 2시를 넘기고 일단 피곤하니 호텔로 다시 돌아와서 아내와 어머니는 샤워를 한 다음에 낮잠을 청하고, 나와 아이는 욕조에서 물놀이,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내와 어머니는 한참 낮잠을 즐기고 나서 오후 5시 30분을 넘기자 주변이 어두컴컴해졌다. 둘을 깨운 다음 출출하니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토론토가 영하 10도 이하인 날씨였기에 영상 20도인 곳에서 바로 온 우리는 추위를 많이 탈 수밖에 없었다. 기온 30도의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그래서 뜨끈한 국물로 몸을 추스르고 잠시 여행의 숨을 고르고 싶어서 무엇을 먹을지 고르고 고르다 결국 토론토 현지인들이 찾는 맛집이라는 일본 라멘을 먹기로 했다. 라멘 집은 로컬 맛집이라 평소 대기가 많다고 해서 자리가 있을까 싶었는데 마침 우리가 딱 갔을 때 마지막 자리가 있어서 대기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종업원들이 다 일본인이라 나는 오래간만에 일본어를 써가며 주문을 했다. 각자 라멘을 주문하고 추가로 교자와 쌀밥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끈한 국물을 입 안으로 들이밀면서 잠시 추위를 잊었다. 라멘과 교자, 쌀밥을 먹으며 속을 데웠는데 오후 내내 나와 같이 놀았던 아이는 막판에 많이 졸려했다. 어른들도 체력이 이런데 아이도 지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끝나가는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바로 근처에 있는 영 던다스 스퀘어 쪽으로 나왔다. 토론토의 작은 타임 스퀘어라고 불리는 곳인데 아담하니 둘러볼 만했다. 서울 삼성역 사거리보다 훨씬 작은 규모라서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규모였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나오니 밤공기가 제법 시원하게 느껴졌다. 졸린 기분도 깨어나는 듯해서 눈 쌓인 광장에서 눈싸움도 하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 뭉치 위에 올라가기도 하면서 겨울 왕국의 밤공기를 시원하게 마셨다. 영 던다스 스퀘어에 있는 마트에서 어머니가 과일을 많이 못 먹은 것 같다고 해서 간단히 과일과 주전부리를 사고 호텔로 돌아와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여행 내내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못 먹는 식단이라서 캐나다 과일을 사서 다 같이 야식으로 즐겼다. 내일은 다시 짐을 싸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떠날 계획이라 특히 어머니께서 기대를 많이 하셨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미국 워싱턴으로 가서 짐을 풀을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