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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merica!

2020년 1월 21일(9일째)-워싱턴 시가지

by 오스칼

아침 7시에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갔다. 미국에서 첫 호텔 조식이고 무료 쿠폰을 3개나 받은 터라 기대가 됐다. 가짓수가 많진 않았지만 달걀과 과일, 커피 위주로 먹고 워싱턴 여행 전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충분했다. 아이랑 어머니가 화장실을 가려는데 어디 있는지를 몰랐는데 아이가 "내가 물어볼까?" 해서 직원에게 "Where is the restroom?"이라고 물어봤단다. 대답을 듣고는 길을 찾아서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한다. 아이의 영어에 대한 자신감 변화가 놀랍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와 워싱턴 첫날 여행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로 개발된 계획도시로 미국 50개 주 어느 하나에 속하지 않는 특별 행정구역이다. 그래서 미 의회에도 의원을 보내지 않는 특수성이 있다. 미국의 3번째 수도이면서 현재 가장 오랫동안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인데 그 전에는 뉴욕, 필라델피아가 잠깐 수도 역할을 했었다. 포토맥 강의 동쪽에 워싱턴 카운티가 지금의 수도 워싱턴으로 미국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것은 미국이 연방임을 잘 보여준다. 주의 연합체인 연방은 어느 주에 수도가 있게 되면 위급 상황 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연방 직할 영역이 필요했던 것이다.


워싱턴 기념탑에서 아이와 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우버 택시에 올라 워싱턴 기념탑으로 갔다. 거리가 조금 있고 날씨가 쌀쌀하거나 시간이 없을 때에는 우버를 이용했는데 시간을 아끼고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여전히 미세먼지 하나 없는 새파란 하늘과 높이 솟은 오벨리스크가 멋졌다. 진짜 오벨리스크는 아니고 본뜬 모양이지만 이곳의 랜드마크이자 상징으로 워싱턴 도시의 고도는 이 탑을 기준으로 제한이 되어 있다. 사실 호텔에서 더 멀리 있는 링컨기념관에서 내렸어야 하는데 아내가 워싱턴 기념탑과 헷갈려서 일찍 내리게 되었다. 안내를 맡은 아내는 워싱턴과 링컨을 헷갈리는 지식 부족을 너무 후회스러워했다. 나와 아이는 기념탑을 배경으로 점프샷을 찍어대며 실제로 본 건물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 이미 여기서 내렸기 때문에 다소 추웠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천천히 걸어서 링컨기념관으로 갔다.


워싱턴 기념탑과 마주 보는 거대한 기념관의 모습은 으리으리하고 웅장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답게 그리스 신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한국에 노예 해방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미 연방 보전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한 인물이다. 그래서 도리아식 열주 36개는 링컨이 사망할 당시 연방을 구성한 주의 숫자를 상징한다. 인권운동의 성지로 각종 차별, 전쟁 반대 시위가 많이 일어났는데 특히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기념관에서도 많은 사진을 남겼다. 우리 같은 가족 여행객보다는 단체 관광을 오거나 학생들이 캠프로 와서 구경을 많이 했다. 날씨는 청명하지만 쌀쌀해서 핫팩을 깔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와는 다르게 이곳은 겨울이긴 겨울이었다. 근처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공원도 들렀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그 역사를 아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뭉클하고 엄숙한 느낌이 감도는 건 당연했다. 미국 병사들의 모형이 놓여 있었는데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이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근처에 위치한 백악관으로 방향을 돌려 걸었다. 백악관 안으로는 들어갈 수는 없어서 멀리 보이는 백악관을 무대로 앞에서 사진을 찍고 깔끔하고 단정한 워싱턴의 거리를 마저 걸었다. 워싱턴의 겨울은 한국만큼이나 추웠다. 살을 에이는 바람에 아이 두 볼이 빨개지고 또 오래 걷기를 힘들어했다.


링컨 기념관에서 아이와 아내

다음은 그 유명한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을 유람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워싱턴 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곳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미국 역사박물관에 갔다. 짐 검사를 하는데 아이가 대뜸 먼저 "There's nothing in my pocket!"하고 "Can I get a map?" 해서 지도도 얻고 영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아내와 어머니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많이 흐뭇해했다. 영어 공부를 시킨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영어에 친근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여기 와서 작게나마 빛을 발했다. 이곳에서 미국의 역사, 전쟁, 문화, 대통령 등 다양한 전시를 둘러봤다. 수많은 영어 단어가 나에겐 낯설었지만 익숙한 전시품들을 보면서 유익한 관람이 되었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아이

계속 오래 걷는 게 힘든 아이에게 자연사 박물관은 공룡박물관이라고 엄청 얘기해 놓아서 버티게 하는 기대주였다. 커다란 아프리카 코끼리 박제로 시작하여 공룡 화석과 뼈들, 동물들, 인류의 기원까지 살아있는 것 같은 전시품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과학 관련 책을 보면 항상 등장하는 이 박물관을 직접 내가 거닐고 보고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놀라울 만한 이 작품들을 보는 게 모두 무료라니 워싱턴 관광의 필수코스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도 흥미로워하며 잘 따라다녔고 어머니는 잘 따라다닌다고 기념으로 장난감 공룡알 하나를 사줬다. 아이는 진짜로 부화하는 줄 알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와서는 북쪽으로 걸었다. 수많은 정부 청사가 곳곳에 있다. 법무부와 FBI도 지나쳤다. 점심은 간단하게 동부의 햄버거 명당 쉐이크셱버거에 갔다. 우리나라에도 있어서 사실 전에 가본 버거라서 기대는 많이 되지 않았지만 본토의 맛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흔히 미국 3대 버거라고 일컬어지는 인 앤 아웃, 파이브 가이즈와 함께 손꼽히는 미 동부의 대표적인 버거라서 방문했다.

가게 점원에게 주문을 하는데 나의 스타워즈 모자가 마음에 든다고 칭찬했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적을 때 루크 스카이워커라고 응대했다. 햄버거 3종류와 프라이 2종류, 콜라와 밀크셰이크까지 종류별로 맛보았다. 빵이 부드러우면서 맛있은데 역시 가격이 비쌌다. 인 앤 아웃과 비교해서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4만 원이 넘게 나왔다. 아무래도 내 입맛과 정서에는 인 앤 아웃이었다.


포드 극장 앞에서 아내, 아이, 어머니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포드 극장이 근처라서 방문했다. 포드 극장은 알다시피 남부 연방을 지지했던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을 단 한 발의 총알로 암살했던 곳으로 미국 역사에 있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장소였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고 기부금만 자유롭게 받고 있어서 우리도 기부금을 내고 구경을 했다. 안타깝게 그날 리허설이 있어서 극장 내부까지는 보지 못하고 밑에 조성된 박물관만 관람하고 나왔다. 링컨은 미국에서 상당히 존경받는 인물이기에 여러 미국인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 갔다.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곳을 와야 하는 이유는 근대적 의미의 최초 민주공화국인 미국의 지도자인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에너지가 떨어져서 아이, 아내, 어머니는 쉬엄쉬엄 보았다. 아이는 키즈 코너에서 아내와 함께 얼굴 그리기, 춤추는 동영상 찍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흑인 박물관 가드한테 덩치가 아주 커서 운동선수해야겠다고 칭찬을 들었다. 나에게는 여자 박물관 가드가 재킷이 예쁘다고 마음에 든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일상적으로 상대방에게 보이는 게 있으면 칭찬하는 것이 의례적인 모습인가 보다.


저녁은 근처 바비큐 마켓에 갔다. 미국의 나름 유명 음식이라면 바비큐인데 워싱턴에서 유명한 가게라고 해서 방문했다. 주문 방식이 조금 특이했은데 자리에 앉고 음식을 내어주는 곳에 가서 먹고 싶은 부위, 내용을 말하면 즉석에서 썰어주었다. 우리는 닭고기, 소고기, 소시지, 등갈비까지 조금씩 받아서 먹었다. 양이 넉넉하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어서 말없이 아내에게 양보하면서 먹었다. 워싱턴 박물관들을 쭉 훑고 지나간 덕분인지 오늘 하루 3만보를 걸어서 여행 기간 동안 걷기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땀범벅이 된 채로 따라다닌 아이에게 모두 박수를 쳐줬다.

링컨 대통령 기념관
한국전쟁 기념 공원








조지 워싱턴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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