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2일(10일째)-국회 의사당, 스미소니언 박물관들
아이가 어젯밤 10시에 잠들더니 아침 6시에 홀로 일어나서 화장실 가서 오줌 싸고 놀잇감 달라고 어머니를 귀찮게 했다고 부스스 일어난 나에게 말했다. 나머지 식구들은 아침 7시에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아침에 먹다가 남은 커피를 싸들고 호텔을 나섰다. 예약된 투어시간에 맞춰 국회의사당을 향해 걸었다. 화창한 날씨 속에서 인도 위에는 출근하는 사람들, 차도 위에는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자동차들로 붐볐다. 조금 걸어가자 저 멀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백악관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국회의사당의 하얀 돔이 보였다. 실제로 가까이 가서 보니 매끄러운 백색 건물이 고풍스러우면서 위압감을 가져다주었다. 밑에 있는 방문객 센터로 가서 들어가려는데 입장 규정이 까다로웠다. 모든 음식과 심지어 물까지도 없애야 했다. 박물관 들어갈 때 물은 허용이 되었는데 그래서 결국에는 아이 간식으로 가져갔던 사탕과 쿠키 과자는 먹지 못하니 쓰레기통에 버리고 열지도 않은 1리터짜리 큰 생수 한 통을 가족이 나눠서 모조리 마셔야 했다. 그 때문에 시간도 지체되어 여유 있게 왔다고 생각했지만 겨우 오픈 시간에 도착했다. 국회의사당은 캐피톨(Capitol)이라고 부르는데 로마의 7개 언덕 중 카피톨리누스 언덕에서 이름을 따왔다.
투어가 시작되어 단체 극장에 모여 'E pluribis unim'이라는 영상을 보고 일일이 헤드폰을 받은 뒤 가이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설명이 영어라서 나는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까 입장 전에 마신 물 때문에 모두 화장실이 급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을 갔다 오니 다른 가이드가 먼저 간 가이드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었는데 그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다고 헤드폰을 물티슈로 닦아 주었다. 뒤늦게 투어에 합류하여 로툰다, 원형 중심에 이르렀다. 거대한 원형광장에는 미국의 독립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미국 초기 역사들이 주제로 한 벽화들이 걸려 있었고 위에는 천장화가 있었다. 왕국이었던 시절이 없는 미국이지만 워싱턴을 신격화해서 표현한 것이 특이했다. 어쩌면 짧은 역사를 가진 그들에게 있어 워싱턴의 존재는 제우스에 비견되나 보다. 사진을 찍고 옛 상원 회의실과 하원 회의실, 50개의 동상을 구경하고 투어를 마쳤다. 그리고 연결된 지하통로로 국회 도서관인 토머스 제퍼슨 빌딩으로 넘어갔다. 고풍스러운 국회 도서관을 내려다보고 거리로 나셨다.
거리에는 대법원에서 시위하는 풍경이 보였는데 기자들과 카메라, 조명들을 보니 정치 중심지다운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와 상반되게 잔디가 깔린 넓은 공원에서 운동하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워싱턴의 박물관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많았던 내셔널 갤러리에 도착하여 둘러보았다. 국립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는 본래 국가에서 처음부터 만든 것은 아니고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멜렌이 기증하여 그를 토대로 1941년에 문을 열어 총 3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두 개의 건물이 있는데 서관은 고전 미술 위주이고 동관은 현대 미술 전시라서 우리는 바로 서관으로 이동했다. 역시 어머니와 아내, 아이는 셋이 같이 다니고 나는 제일 길게 집중해서 감상했다. 중세미술부터 르네상스, 인상파 등 유럽 예술가들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런던과 파리의 미술관들이 떠올랐다. 자국 작가들의 그림도 있지만 이러한 퀄리티 있는 작품을 스스럼없이 전시하며 무료로 전시하는 수준에 대해 놀라울 뿐이었다. 아내와 어머니는 소파에 아이를 두고 번갈아가며 쭉 미술관 스캔을 했다. 내가 보고 왔을 때 아이와 어머니는 한글 읽기, 숫자 퀴즈를 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기 전에 그림에 전혀 관심 없는 아이를 데리고 제일 유명한 고흐, 고갱, 르누아르, 모네 등의 작품 아래서 사진을 찍어줬다. 나중에 미술시간에 그림을 마주치면 아마 알아차릴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사진으로 남겼다. 다소 늦은 점심은 지하 푸드코트에서 먹었다. 그릇에 음식을 담고 무게를 달아 가격을 내는 건데 괜찮은 가격으로 먹을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다음 그다음 코스인 아내와 아이가 기대하던 맞은편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에 갔다. 이제 아이에게 지도 받아오기와 화장실 묻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Can I get a map?" 한 다음 직원이 무슨 말 쓰니? 하면 "Korean!"이라고 하고 "How many?" 하면 "Four!" 해서 직원이 하는 질문까지 받을 줄 알았다. 아내는 멀리서 보는 그 모습에 아주 대견해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 펼쳐진 우주선과 그 전경에 감탄했는데 박물관이 공사 중이라 절반밖에 전시를 하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말 그대로 항공우주박물관 중에서 항공 분야는 리모델링 중인 듯했다. 그래도 각종 우주선, 우주복, 장비, 우주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돌아보았다. 아이는 체험 코너를 다 돌고 우주 비행선들을 관심 있게 봤다. 이곳은 그래도 만들어진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규모는 굉장하고 전시품목도 훌륭했지만 체험하는 쪽은 내가 사는 도시의 체험관이 더 좋아 보였다.
짧은 관람을 끝내고 마지막 장소인 허시혼 미술관으로 갔다. 바로 옆 건물이어서 지체 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현대 미술 전시관인데 나와 아내는 그렇게 현대 미술에 관심이 높지는 않아서 작품을 보는 호기심에 방문했다. 사실 몬드리안이나 잭슨 폴록같이 유명한 현대 화가들이 있지만 작품을 봐도 고전 미술을 보는 만큼의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인 듯했다. 그래도 직관적인 작품 속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힘이 현대 미술에 있어서 그 매력 또한 컸다.
워싱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장소였다. 어릴 때 책에서 보던 그 사진 속에만 등장하는 이 공간을 직접 걷고 눈으로 본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이곳에 머물면서 내셔널 갤러리, 자연사 박물관, 항공 우주 박물관, 미국 역사박물관 등 주요한 곳들을 다 봐서 다행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씩을 하며 피로를 녹였고 저녁식사는 인근에 저렴한 가격으로 한식을 맛볼 수 있는 한식당에 갔다. 레스토랑은 아니고 테이크 아웃을 할 수 있으면서 식사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종류는 비빔밥과 국수로 토핑이나 쌀, 면 종류도 다르게 할 수 있었다. 주문한 음식들은 한국의 비빔밥, 국수와 무언가 같으면서도 많이 달랐다. 약간 잡탕 같았지만 쌀과 채소들을 만난 것에 감사했고 다들 감사하게 깨끗이 먹었다. 이렇게 워싱턴의 마지막을 끝내고 내일 드디어 마지막 숙소가 기다리고 있는 도시인 뉴욕으로 간다. 샤워하려고 물을 틀면 석회수가 나오던 워싱턴의 호텔과도 이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