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사이즈 침대에서 아내와 어머니, 아이가 같이 잤는데 자리가 좁았는지 낮잠 때문인지 아이는 밤에 잠을 설쳤다. 다들 서둘러 새벽에 일어났다. 4시 30분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이즈미르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호텔에서는 조식이라고 샌드위치, 과일과 물을 한 가득 싸주었다. 이곳은 지금까지 다녀 본 호텔 중에 최고의 호텔로 기억되는데 서비스, 가격, 분위기 면에서 숙박객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맞이하는 호텔이라 좋은 기억만 가득 안고 떠난다. 짧지만 강렬했던 괴레메 카파도키아를 떠나 카이세리 공항으로 가서 수속을 밟고 기다리는데 맞은편에 앉은 히잡을 쓴 어떤 여자분이 아이에게 과자를 주었다. 여기 사람들은 왜 이리 친절한지 아이를 보면 항상 먹을 걸 쥐어주곤 했다. 공항 슈퍼에서도 주인아저씨가 아이에게 귀엽다며 막대 사탕을 하나 주었다. 기다리면서 샌드위치를 먹는데 어머니는 한국에서 가져온 튜브 고추장을 발라 고향의 맛을 느끼며 드셨다. 아침에 떠난 비행기는 날아 이즈미르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손에는 받은 막대사탕, 입에는 받은 과자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데 그곳에서도 아이를 본 남자가 초콜릿 과자를 나눠주었다. 우리는 이런 광경을 자주 봤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우리 경험상 어느 곳, 어느 나라를 가도 이렇게 아이에게 환대해준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즈미르는 터키 최대 수출 항구로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에 위치한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다. 수도인 앙카라, 이스탄불과 더불어 3대 도시로 불린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어머니와 아내가 가고 싶어 했던 에페소스 유적이 근처에 있고 아테네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몰랐는데 후에 호메로스가 태어난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처음으로 비를 만나게 되었다. 계속 흐리고 맑은 날씨가 반복되더니 이곳 이즈미르는 비가 조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먼저 셀축이란 도시로 가야 했기에 기차표를 발권해서 기차를 타고 셀축으로 이동했다.
셀축은 터키 이즈미르 주에 있는 작은 도시로 인구는 4만 명을 밑도는 수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군 단위 읍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작은 도시가 유명한 이유는 에페소스가 인접해있어서이다. 셀축이라는 도시 이름은 서아시아 역사에 등장하는 셀주크 투르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즈미르에서는 세차게 내리던 비가 셀축에 왔을 때는 맑게 개어 선명하고 푸른 하늘을 보이고 있었다. 캐리어와 짐에다가 아이까지 있어서 우산 쓰고 가는 게 부담스러웠던 우리에겐 출발이 좋았다. 단정하고 정갈해 보이는 셀축 거리를 지나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이층 집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아담하니 묵기에 좋아 보였다. 인상이 푸근한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릴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이층으로 올라가 방을 안내받았는데 커다란 침대, 작은 침대 1개씩 있고 샤워시설이 있었다. TV나 다른 전자기기가 없고 단정한 방 안과 전통 문양이 있는 창문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짐을 풀고 나와 주인 내외분께 에페소스에 가고 싶은 데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주인 할아버지께서 흔쾌히 에페소스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했다. 덕분에 편하게 에페소스까지 갈 수 있었다. 에페소스는 셀축에서 2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그 도시에 오게 되니 어머니와 아내는 약간 감동을 했다. 이 곳은 한국에서 단체 관광으로 많이 오는 코스라고 해서 그런지 한국어 안내 책자도 있었다. 로마시대의 고대 도시를 온전히 보는 것은 처음이라 나 또한 굉장히 낯설면서 기대감에 부풀었다.
에페소스 포즈
에페소스는 에페소스 공의회로도 알려져 있고 과거 크리스트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성모 마리아가 마지막 생애를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근처에 성모 마리아가 묵었다는 집도 있다. 나는 에페소스 도서관으로 기억이 많이 된 도시이다. 이슬람 국가 터키 안에 있지만 고대 크리스트교의 문화재가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 터키이기에 그중 백미로도 일컬어지는 에페소스는 크리스트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도시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가면서부터 과거 대리석 건물들의 기둥, 벽 잔해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원전 7세기부터 전성기였던 이 도시는 과거 영화를 누렸던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 흔적은 남아 지금 사람들이 반추하게끔 했다. 도시가 거의 온전하게 남이 있고 지금도 발굴과 복원이 진행 중이라 천천히 둘러보기에 충분한 크기의 고대 도시였다. 그래서 그 거리를 걷다 보면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상상해볼 수 있다. 원형 극장에서 울려 퍼졌을 희곡과 노래들, 공용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서 나누었을 담소, 홍등가에 가기 위해 발 크기를 재던 모습, 음악회나 시낭송이 열렸을 소극장, 황제에게 바쳐진 거대한 신전, 거대한 목욕탕 그리고 이곳을 오고 갔을 사람들 등 여러 유적들이 즐비한데 그중 내 눈을 끌었던 것은 역시 거대한 켈수스 도서관이었다. 지금도 앞모습이 잘 보존된 도서관은 그 크기를 보았을 때 지식과 규모가 컸던 도시를 가늠한다. 켈수스 도서관은 에페소스 유적의 하이라이트로 이 앞에서 항상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아시아 총독이던 켈수스를 기념하여 지어진 건물은 화려한 코린트식 열주로 세밀한 묘사를 뽐내고 아테네 여신의 석상이 지키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오면 거대한 아고라와 야외극장에서 또 한 번 고대 도시의 웅장한 여유를 눈에 담게 된다. 날씨도 포근해서 천천히 산책하듯 둘러봤는데 아이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잘 다녔다. 2시간 정도 걷자 끝이 보였다.
컵라면 먹방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니 컵라면을 파는 곳이 있어서 아이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지 컵라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물을 받아 가게 앞 테이블에서 먹기 시작했다. 맵지 않아 맛있게 먹고 거의 다 먹었을 때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안에 들어가서 먹을 수 없어서 급하게 버리고 나왔다. 바로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우린 서둘러 택시를 잡아 셀축 시내로 들어왔다. 그런데 2km의 가까운 거리인데 다소 비싼 요금을 우리에게 요구했다. 아이가 있어서 비도 계속 내리니 지불하려 했는데 마침 그만한 액수의 지폐를 가지고 있지 않고 고액권을 가지고 있어서 근처 가게에서 바꿨다. 그런데 택시비 외에 고액권을 바꾸면서 택시기사가 그 돈으로 껌을 하나 샀는데 그것도 가져간 것이다. 그땐 몰랐는데 동전을 받고 확인하고 알았다. 액수보다는 뭔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게 화가 났다. 터키에 와서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득했는데 뭔가 금이 간 듯해서 안타까웠다.
일단 비도 내리고 해서 숙소에서 우산을 가지고 나왔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면서 거리를 걷던 중에 보이는 가게에 그냥 들어가 보았다. 검색해서 찾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불현듯 식당에 가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니까 말이다. 들어간 가게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터키에서는 맛에 대해 실패했던 적이 없다. 간이 세지 않고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만으로 조리를 하여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들이 많았고 채소도 많아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번 엄청나게 주는 빵도 맛있었다. 내 팔뚝보다 큰 거대한 빵도 우리 돈으로 200~300원 정도라니 말 다했다. 양꼬치, 양갈비, 아이란 등을 주문해서 맛있게 먹고 거리를 걷던 중에 아이를 위해 달콤한 디저트 간식도 사고 터키가 또 이슬람 국가로는 특이하게 맥주가 유명하니 에페스 맥주 가게에 가서 기분 좋게 한 잔씩 마셨다. 그렇게 터키에서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