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으로 이끌림이 강렬했던 가구공장 대표님과 계약을 진행했다. 스터디 카페, 학원용 가구를 제작한 경력도 상당했고 자체 제작이 가능한 공장도 가지고 있으니 함께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사업에 대해 배우며 함께할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었다. 심지어 정말 운 좋은 일이 생겼다. 사람이 잘 풀리려면 이렇게 풀리나 보다. 견적서를 받았는데 다른 업체에서 받은 예산의 절반가였다. 믿을 수가 없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손가락으로 0의 개수를 몇 번이고 다시 세었다. 대표님이 견적서를 주고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거였다.
"실수로 0 하나 빼먹은 거 아니야?"
좋은 자재와 브랜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산에 딱 맞게 진행할 수 있도록 견적서를 정리해 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 정도 예산은 맞출 수 있다고 하자 '휴우' 하고 대표님도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산 이야기는 서로 처음 해봐서 설마 이 금액도 없으면 어떡하나 싶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천만 원 들고 인테리어 해달라고 왔을까 봐 걱정하신 듯했는데, 사실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기 전에는 그 생각을 하고 있긴 해서 조금 부끄러웠다.
예산을 이렇게 맞춰줄 수 있던 이유는 일단 이윤을 많이 챙기지 않았다고 한다. 설계 비용을 받지 않았고, 가구는 자체 제작이니 자재비만 받았고, 회사 순이익도 남기지 않았다. 알고 보니 대표님이 설계를 하면 남편과 남동생이 가구 제작과 설치를 담당하는 가족 회사였는데, 대표님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함께 일을 하는 관계라 이런 결정이 가능했다. 단가가 비싼 냉난방기나 환기 시스템은 대표님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가격을 최대한 낮추고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끼리 구매하려고 했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얼마나 머리 싸맸을지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했다. 분명히 '대기업 제품이 최고지!' 이러고 나서 막상 예상 금액을 받으면 손만 덜덜 떨었을 거다. 무인 사업의 경우 키오스크 비용도 500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 만만치 않은 금액이 발생한다. 대표님은 고민하시다가 스터디카페 이용 어플을 개발하신 분을 소개해주셨다. 기계 비용이 들지 않고 월 단위로 어플 이용료만 지불하면 쓸 수 있었다. 대학생 상권이라 오히려 어플 이용이 편리하고, 키오스크처럼 기계의 잔고장도 없어서 도움이 될 거라고 알려주셨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 비용을 최대한 절약할 수 있었다.
대표님이 원하는 건 딱 하나라고 하셨다. 그동안 단가 맞추느라 써보지 못한 고급스러운 자재도 실컷 써보고, 고객 요구 들어주느라 못했던 디자인도 맘껏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물론 우리와 합의 하에 말이다. 원하는 건 정말 그게 다였다. 오랜만에 열심히 사는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반갑다며 투자 개념으로 함께 좋은 공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결국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 전혀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까지 편하게 해 주었다. 작은 체구에서 열정과 강함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빛이 나는 사람이라니 오랜만에 닮고 싶은 멋진 어른을 만난 것 같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그렇게 뚝딱뚝딱 공사가 진행될수록 신뢰감은 배가 되었다. 진행하면서 각종 사기 유형을 들을 수 있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사기 치는 방법이 많다니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인테리어를 할 때 차갑고 투박한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벽 앞에 가벽을 세우고 그 안에 단열재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가벽 뒤에 넣어야 하는 단열재를 빼돌리고 벽을 세우는 사기 유형이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친환경 단열재가 가격이 비싸니 견적서에만 넣어놓고 공사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참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단열재가 없으면 방음과 단열 기능을 하지 못하는 깡통 공간이 된다. 겨울에는 히터를 아무리 틀어도 춥고, 볼펜 하나만 떨어뜨려도 소리가 크게 울려서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다. 내가 구한 상가는 특히나 소리가 심하게 울리는 반지하였다. 가벽을 세우기 전에는 서로 멀리서 말을 할 때 울림이 심해서 우엥우엥 이렇게 들릴 정도였다. 그런 공간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두 분 회사에 계셔서 현장에 오기 힘드니 사진으로 작업 과정을 다 보내 줄게요!"
우리가 출근하느라 공사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니 사진과 영상을 실시간으로 엄청 보내주셨다. 사진을 보니 단열재가 가벽 밖으로 삐져나올 것처럼 아주 빵빵하게 들어가 있었다. 빨리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어서 6시가 되자마자 후다닥 회사 밖으로 뛰쳐나와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니 단열재 작업이 끝나고 깔끔하게 마감된 벽이 보였다. 벽을 툭툭 두드려보라고 해서 따라 했는데 정말 벽 안이 꽉 차서 소리 울림이 없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서 대화를 해도 또렷하게 들리는 거 보니 작업이 확실하게 됐구나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사기당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다고 이렇게 믿음으로 일하고 싶다고 하셨다. 대표님 같은 분들만 있다면 인테리어 사기라는 단어조차 없어질 것 같았다.
"CCTV는 전선 작업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설치하는 게 좋아요. 작업자도 사람이라 누군가 지켜보는 것과 지켜보지 않을 때 효율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매일 시도 때도 없이 CCTV를 지켜봤다. 감시라기보다는 그냥 너무 신기했다. 작업하시는 분들이 손을 툭툭 움직이면 벽이 되고, 창문이 되고, 조명이 만들어졌다. 어렸을 때 게임에서 마이룸을 꾸미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공간으로 변해갔다. 대표님은 공사 기간 동안 열정에 불타올라 집에 가시는 날이 없었다. 스터디 카페 근처에 레이를 끌고 와서 며칠 밤을 새우곤 했다. 체구가 작은 편이라 레이가 거대해 보였고 대표님의 움직이는 작업실처럼 보였다. 모든 게 다 들어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서 씻고 말끔한 정신으로 다시 올게요. 이거 집중하는 동안 밀린 일들도 있어서 한숨 돌리고 시작할게요."
그렇게 잠시 쉬고 온다던 사람이 2주 동안 전화도, 문자도 되지 않고 돌연 사라져 버릴지는 꿈에도 몰랐다. 초보 사장들의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