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무 Feb 13. 2022

[Lv.8]예쁜 게 최고라는 젊은 대표님을 만나다.

 "스터디 카페 예쁜 거 다 필요 없다."는 가구 공장 대표님을 뒤로하고 새로 소개받은 인테리어 팀은 등장부터 남달랐다. 퇴근 후에 미팅이 가능해서 어둑어둑해진 저녁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는데, 가로등 불빛 아래 롱코트를 걸치고 구두를 신은 두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골목길 끝에서 걸어오는 실루엣만은 흡사 이동욱과 공유가 롱코트를 걸치고 김고은을 구하러 오는 도깨비 2회의 엔딩 장면인 줄 알았다. 일하느라 씻지도 못하고 3일 밤을 새운 가구 공장 대표님의 첫인상과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만남이었다.


 두 분은 같이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다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서 함께 퇴사 후 창업을 했다고 했다. 나이는 우리 커플과 또래인 20대로 보였고 눈 빛에는 젊은 패기와 열정이 가득했다. 먼저 준비해 오신 포트폴리오를 봤는데 '우리가 원하는 건 이 감성이다!' 싶었다. 작은 주택 인테리어를 봤는데 쨍한 주황색 현관문부터, 햇살이 쏟아지는 통유리, 독특한 모양의 조명까지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범할 수 있는 공간을 재미있고 매력적인 장소로 바꿔 놓았다. 우리도 기존 스터디 카페의 비슷한 어두운 조명, 고동나무색 책상, 다 똑같은 까만 의자에서 벗어나 예쁜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젊은 인테리어 대표님의 이야기조차 홀리는 느낌을 받았다.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일단 예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기능적인 부분들을 고려해서 조화롭게 맞추면 완벽한 공간이 나올 수 있어요. 예쁜 곳과 편안한 곳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를 완벽하게 잡을 수는 없지만, 흔한 스터디 카페와는 차별점을 두기 위해 예쁜 공간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어요."


 반지하 공간이지만 페인트 작업으로 햇살이 비추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인테리어, 블라인드 뒤로 LED 전구를 넣어서 햇살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구성, 기존처럼 고정된 칸막이가 아닌 이동식 칸막이로 커플이 공부를 하러 오면 2인석으로 앉을 수 있는 책상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일반적인 스터디 카페를 할 생각이면 시작하지 않을 거라고 새로운 스터디 카페 탄생에 굉장한 열정을 보였다.


 미팅을 진행하고 나니 가구 공장 대표님과 전혀 반대의 계획을 듣게 되어 혼란스러웠다. '예쁜 것은  필요 없다는 업체' '예쁜 것이 최고라는 업체' 충돌이었다. 원래 업체 결정이 이렇게 극단적인 건가 싶었다. 사실  업체를 먼저 만났더라면 카페형 스터디 카페를 만들자는 초기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선택을 했을 거다. 무엇보다 젊은 감각과 열정, 신선한 아이디어 그리고 같이 도전하는 20 청년들로서 좋은 결과를   같았다.


 하지만 가구 공장 대표님을 만나고 우리도 스터디 카페 창업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생긴 상태였다. 둘이서 머리 싸매고 고민해 봤자 도저히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둘은 잠깐 스터디 카페를 이용해 본 거라 장시간 공부하는 학생 입장도  몰랐다그래서 실제 이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낫겠다고 판단했다. 3년간 스터디 카페에서 시험을 준비한 친구를 찾아갔다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며 서울 곳곳의 수많은 스터디 카페를 이용한 친구였다.


 "결론은 네가 준비하는 건 카페가 아니라 스터디 카페잖아. 예쁘면 물론 좋지만 스터디 카페를 오래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말 공부 목적으로 가는 거긴 해. 깨끗하고 공부하기 편하다면 인테리어는 중요하지 않아. 나도 정기권을 끊어서 오래 이용한 곳들은 집중이 잘되고 책상이 좋은 스터디 카페였어."


 스터디 카페를 이용하는 주 고객인 취업 준비생, 고시생, 수험생들은 하루 종일 공부할 공간이 필요한 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이라는 게 차별화도 중요하지만, 기본을 놓친 차별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친구는 혼란스러운 내 표정을 보더니 또 한 번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네가 만난 가구 공장 대표님 조언대로 하면 공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듣기만 해도 스터디 카페 전문가 느낌이 나거든. 대신 휴게 공간을 네가 원하는 감성으로 꾸미거나, 감각적인 소품을 직접 준비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너무 철없어 보일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취업을 준비한 친구, 수험생인 사촌동생까지 스터디 카페를 많이 이용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봤을 때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그 시기 즈음 우연히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나영석 피디 편을 시청했고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나PD님은 1박 2일 PD를 그만두고 새로운 걸 시도할까, 원래 본인이 잘하던 분야인 여행 프로그램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 내가 잘하는 것을 하자.'라는 선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잘하는 것에 새로움을 살짝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예능 프로그램이 '꽃보다 할배'였다. 누가 자유여행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할아버지 배우들이 나올 것이라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 예능은 모두가 알다시피 웃음, 신선함 두 가지를 다 잡고 대박을 쳤다. 잘하는 것에서 조금의 신선함. 기존의 것과 새로운 시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기존 스터디 카페의 장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기본이 되는 부분들을 가져가면서 우리만의 새로움을 얹기 위해 고민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머리 싸매고 고민한 끝에 가장 어려운 단계라는 인테리어 업체를 확정했다. 그리고 철석같이 믿었던 가구 공장 대표님으로 인해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날이 왔다.

이전 07화 [Lv.7]우연히 만난 대표님이 창업을 떠먹여 주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