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이 뭐라고
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별 이유는 없었다. 음악을 전공하며 노래 가사를 쓸 때 나는 먼저 산문처럼 난잡한 글을 써놓고 그 속에서 키워드를 골라 가사로 정리한다. 그렇게 써놓았던 산문들은 하나하나씩 쌓여갔고 그때 때마침 지인이 브런치라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 내가 쓴 글을 올려 보라 말해주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기껏해야 카카오에서 만든 블로그 정도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들어와 보니 이게 웬걸, 나의 글을 심사해보고 기고할지 말지 결정해주겠단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는데...
도전을 좋아하고 한번 꽂힌 것은 끝장을 보고야 마는 피곤한 성격을 가진 나는 또 하나의 재밌어 보이는 영역을 발견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본격적으로 나서봤다. 난잡하게 메모장에 쌓여있던 산문들을 정리하고, 나만의 형식을 만들어 사진도 넣고 꾸며 글을 써보았다.
최대한 저자세를 취하고 온갖 감언이설을 넣어서 쓴 신청서를 카카오에게 제출했고 무리 없이 작가가 된 나는 그렇게 음악 하는 베짱이에서 글도 쓰는 베짱이가 되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은 몇 명뿐이 읽지 않았지만, 쓰는 것 자체가 재밌는 놀이였기에 별 상관없었다. 어느 날은 10명뿐이 읽지 않은 글에 10명 모두가 좋아요를 눌러준 게 참 재밌었다.
그러던 7월 초, 브런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공모전을 열고 좋은 글을 책으로 내준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업은 아니지만 마음이 동요하긴 했다. 취미로 쓴 글에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나는 재밌는 취미생활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아무 부담 없이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왜 이렇게 나의 마음을 흔드는 것인지, 그다음 날 쓴 글이 알고리즘을 타버렸다. 지금껏 한 번도 기록하지 못한 조회수가 찍히자 마음은 더 요동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지난주 브런치 북 한 권을 완성하여 기고했다.
브런치 북을 완성하고나니, 퇴고를 하면 할수록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 넣을 편수를 맞추려 급하게 쓴 글들이었기에 조급함이 묻어난다. 내 얘기를 하지 못하고 해야 될 것만 같은 이야기를 썼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써야만 하니 싫증이 나고, 해야만 하니 재미가 없다. 자고로 인간은 뭐든지 일이 되면 힘이 빠져버리는 병이 있다.
그저 재밌었던 마음은 어디 가고 어떻게 하면 글이 더 좋아 보일까 고민하는 세일즈맨만이 남았을 뿐이다.
모든지 왜 진지해지면 어려울까. 그것은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일 거다. 마음을 다 했기에, 꽤 좋아했기에, 기왕 하는 거 잘해보고 싶었기에, 더 잘할걸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든 마음에 안 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때문에 걸어온 길에 의심은 없기를 바란다.
뭐 이제 출판되어 편집은커녕 목차도 바꿀 수 없게 된 거 어쩌겠는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자족도 미덕이다(?)
별 볼일 없는 나의 글을 사금 사금 읽어준 어느덧 만 명 가까이 된 독자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Steely Dan - Gaucho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