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청을 위하여
우리 집 창 앞으로 큰 매실나무 한 그루가 있다. 딱히 열매를 먹거나 하지 않기에 별 신경을 쓰진 않는다. 여름이 끝나가던 얼마 전,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어느새 다 물러버려서 땅에 떨어진 매실을 새들이 먹을 수 있나 없나 노려보고 있었다. 꽃이 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열매가 다 물러 떨어졌다니. 문득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나무가 알려준다.
겨울이 조용히 차가운 숨을 거둘 때 피는 하얀 매화는 이윽고 봄이 왔음을 알린다. 용기를 내 피어난 저 꽃 한 송이를 보고선 노란색 빨간색 형형색색의 갖가지 꽃들도 따라서 핀다. 그리고 가장 먼저 용기를 낸 저 꽃은 잠깐 내린 봄비에 가장 먼저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버리고 만다.
우리의 삶에서 가끔은 왜 이렇게 바람이 부나 싶은 순간이 있다. 나의 삶을 왜 이렇게 거세게 흔드나 싶은 바람들이 분다.
마음에, 상황에, 주변 사람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자신이 싫고 또 나를 흔드는 저 바람이 밉다.
카뮈는 이러한 합당하지 못한 일들을 부조리하다고 본다. 하지만 부조리에 굴복하고 넘어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부조리한 상황에 맞서 반항할 때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불합리한 세상이라도 자신은 오직 인간이기만을 원하며 인간에게만 허락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그 생각하는 능력으로 끊임없이 이해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세상에는 의미 없는 부조리가 많다. 합리적이지 못한 고난들이 많다. 전쟁과 기근, 핍박과 질병. 하지만 카뮈는 그 앞에 넘어지지 말라고 말한다. 부조리와 맞서고 무의미해 보이는 눈앞에 현실에 충실할 때 역설적으로 삶은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열매가 맺히기 위해선 꽃이 져야 하고, 꽃이 지려면 바람이 불어야 한다.
삶에 지금 이유 없는 바람이 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부는 바람이 살갗을 에는 것 갖고, 피할 수 없어 보이는가?
그 바람은 분명히 그리고 명백히 당신의 꽃잎을 떨어트릴 것이다. 하지만 꽃이 진 그 자리에는 아주 단단한 열매가 맺힐 것이다.
나 홀로 아름다운 것만 같은 꽃잎이 질 때, 남들과 나누어 먹을 열매가 맺힌다.
거친 바람에 떨어진 나의 꽃잎은 열매를 맺게 할 거름이 될 것이다.
매화꽃 떨어진 자리에 열린 매실로 청을 한 번 담가봐야겠다.
걷는 마음 - 융진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