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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un 12. 2023

다람쥐, 쳇바퀴를 내려오다

베레모를 쓴 다람쥐



  ’굳이‘

  요새 부쩍 입에 붙은 말이다. 굳이 거길 가야 할까? 굳이 그걸 해야 할까? 굳이 그 사람을 만나야 할까?


  설렘이나 감흥은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무언가 기대되어 잠 못 이루는 밤이 언제였던가. 그저 눈을 감으면 사라질 오늘이 아쉬워 의미 없이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며 내일을 미루고 있다.



  반복되는 삶과 무뎌진 감각은 어린아이의 태도를 상실하게 한다. 재밌는 일도 궁금한 것도 하나 없이 매일매일 아는 길을 걷고, 아는 사람 사람을 보고, 아는 일을 한다. 쳇바퀴에서 내려오기 무서워진 다람쥐는 지칠 줄 모르고 쳇바퀴 위에서 말라간다.


  바쁜 삶 속에 지켜가며 살아가는 가치는 무엇일까? 점점 익숙해지는 환경과 친해질 대로 친해진 사람들, 무뎌진 삶 속에서 내 중심을 지키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의 삶에서 단조로움을 느끼며 든 질문이다.




  바쁜 일상은 사람을 무뎌지게 한다. 늘 일어나던 시간에 떠지는 눈. 정해진 시간에 늘 도착하는 지하철. 늘 먹던 시간에 먹는 식사. 늘 똑같은 시간에 드는 잠자리.


  어떠한 가치도, 이유도 없이 그저 반복되는 삶을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고 느낄 때면 나는 무언가를 찾으려 나의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똑같은 삶에서 다른 이유를 찾아내는 것. 내가 기계가 아닌 인간일 수 있는 이유를 찾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


비잔틴시대 모자이크. 성 소피아 성당


  인생은 짜임새 있게 직조하는 고운 비단이 아니다. 어딘가로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우연히 발견해 하나씩 붙여나가는 모자이크다. 그 완성된 그림이 어떨지 지금은 당장 알 수 없겠지만, 분명 어떠한 모양으로든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겠지. 다만 우리는 매일 마주치는 인생의 조각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내 마음속 화폭에 한 땀 한 땀 붙여놓아야 할 것이다.


  넘어졌을 때, 상처받을 때, 기쁠 때, 성취했을 때 어떤 모양으로든 만나게 될 인생의 조각들로 나를 이루고 성장해 나간다면 우리는 모두가 다른 그러나 그 나름대로 아름다울 그림들의 전시회가 될 것이다.






  쳇바퀴에서 내려온 다람쥐가 베레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상상을 해봤다. 제법 우습고 귀엽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Rachmaninoff: Symphony No. 2 in E Minor, op. 27 - lll. Ada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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