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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ul 14. 2022

읽히지 않는 책

난독에서 탐독으로


 나는 약간의 난독이 있다. 눈으로 읽는 것을 하지 못한다. 마음속으로만 읽는 내용은 읽히지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입술을 움직여 작게 읊조리며 책을 읽고 그 소리를 들으며 이해한다.

 공부를 할 땐 큰 약점이었다. 여러 번씩 고쳐 읽어야 했기에 빠르게 본문을 읽고 이해해서 문제를 풀어야 할 때 고생했다.


 하지만 이젠 익숙해진 나의 책 읽는 습관에 불편함이란 거의 없다. 오히려 하도 여러 번씩 고쳐 읽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책만큼은 목차만 봐도 내용이 떠오를 지경이다.



 난독은 어려울 난 자를 써 읽기를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탐독은 즐길 탐 자를 써 읽는 것을 즐긴다는 뜻을 가진다. 읽기 어렵다의 반대말은 읽기 쉽다가 아닌 읽는 걸 즐긴다는 것이다.

 난독은 읽기를 포기하게 된다. 어렵고 잘 읽히지 않는 책에 쉽게 흥미를 잃을 것이고 결국은 읽기를 그칠 것이다. 하지만 탐독은 읽기를 단념하지 않고 그것에 관심을 두고 계속해서 읽고 또 읽는다. 탐독을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관심을 두는 것이다.


 나는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을 포기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물론 그 저의에는 내가 관심이 있는 내가 꼭 읽고 싶은 책에 흥미를 가졌기에 그런 노력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전혀 읽히지 않는 의도와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

 속으로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저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언인지 아니면 비난을 위한 비난만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가 어디인지, 무엇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러는지 알 수 없는 인생에 상황이 찾아온다. 인생에 난독이 찾아온다.


 만약 난독의 대상이 같이 사는 가족이라면 떨어져 살면 해결될까? 인간관계라면 내가 저 사람을 안 보면 괜찮을까? 시련이라면 이 상황에서 도망치면 괜찮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일상에서의 도주를 꿈꾸기도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어려운 책처럼 읽히지 않는 순간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나의 삶을 지독하게 마주하는 탐독일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왜 이러는 건지 모를 상황도 여러 번 읽고 또 고쳐 읽다 보면 결국 그 중심이 보이기 시작한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플라뇌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플라뇌르는 산책자를 뜻한다. 아니 갑자기 산책만 하는 한량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벤야민이 가리킨 산책자는 19세기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를 얘기한다.

 보들레르는 초기 자본주의가 처음 태동한 파리를 거닐며 거리 곳곳에 묻어있는 가난한 자들과 창녀, 쓰레기 더미와 오물 속 자본주의의 추함을 있는 그대로 보았고 그것을 자신의 시에 써 내려갔다.

 보들레르는 산책을 뛰어넘어 삶을 관찰하고 문제를 직면하는 탐독을  것이라 생각한다. 플라뇌르는 문제를 피하지 않고 읽어낸다.


 벤야민은 원초적인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으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없다고 봤다. 그렇기에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초기 자본주의의 심장, 19세기 파리에서 특히 보들레르라는 도시의 탐독자를 통해서 찾아 내려한 것이다.

 지금의 우리를 이루고 있는 과거의 시간들  원초적인 트라우마,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덮어놓고 모른 척했던 지난날의 슬픔을 뒤로하고 진정한 극복으로 나아간다.






 문제를 발견하고 관찰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상황과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객관화하는 것이고, 개인의 비극이 사회의 수많은 현상중 하나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나를 읽을  있게 되는 것이다.

 탐독은 소화와 비슷해 보인다. 단단한 음식이던 무른 음식이던 가리지 않고 나의 양분으로 소화해내는 과정. 읽히지 않던 책이 이해되는 과정. 외면하던 순간을 똑바로   있게 되는 결단의 과정. 감당하지 못할  같은 시련을 감당해 내는 성숙의 과정.



 읽히지 않는 시험의 순간을 그저 지독하게 마주할 때 삶이 내놓을 대답.

 그 대답을 위해서 우리는 그저 인생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관심을 가진채 읽고 또 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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