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리닌그라드 Mar 27. 2023

노을의 꼬리

저물길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일상의 바쁨을 핑계삼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봅니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예전보단 유난히 더 길어진 겨울인 것 같더라도 결국 그 끝을 보인다. 길어진 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노을의 꼬리를 보며 알 수 있다. 옅은 붉은색으로 저 멀리 서쪽 한켠을 밝히고 있는 노을은 하루의 마무리에 적당히 어울리는 배경이 되어준다.



  정오에 백색으로 빛나는 태양을 우리는 바라보지 않는다. 눈부신 태양빛이 우리는 눈을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고상한 체 하기 좋아하는 정오의 태양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져물어 가는 노을은 누구라도 바라볼 수 있다. 수많은 이들에게 추억이 되어준다. 자신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이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다. 나는 내 머리 위에서 스타처럼 빛나는 정오의 태양보다, 느지막한 오후 차분하게 자리를 정리하는 노을에게 더 친밀함을 느낀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정오는 언제일까? 우리의 황혼은 언제일까? 우리는 늘 밝게 빛나고만 싶다. 늘 아름답고 싶고, 언제나 멋있고 싶고, 계속해서 능력 있고 싶을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피할 수 없는 저뭄의 시간이 찾아오면 많은 이들은 저물어 가는 자신을 보며 슬퍼한다.


  장렬히 불타는 노을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기꺼이 저물 수 있는가? 미련 없이 뒤돌아 떠나고, 아무 일도 없었는 듯 다시 동틀 수 있을까?



  빛나는 태양은 아무도 보지 못하나 지는 해는 누구나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쉽게 보이는 노을을 우습게 여길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곳에서 저물고 있다는 것은 반대편에서 뜨고 있다는 말과 동일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일이 되면 똑같은 태양은 다시 하늘 위로 솟구쳐 고고하게 빛나리라.






  황혼은 찰나이기에 아름답다. 영원토록 황혼의 시간에 머물면 우리는 경의로움과, 그리움, 황홀의 감정을 잃어버릴 것이다.

  단 20분. 사활을 다해 자기를 태우는 태양을 우리는 24시간 중 딱 20분만, 찌푸리지 않은 눈동자로 직면하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인생의 황혼도 그러하다. 대낮 같은 젊은 인생에선 아름다운 줄 모르던 인생을, 황혼에 접어들어 비로소 직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알 수 있다. 빛에 가려진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모양이, 색깔이, 일렁임과 흔들림이, 상처들이.


  기꺼이 저물자. 황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옅은 빛 사이로 비쳐 보일 인생의 정수를 사모하며. 다시 떠오를 내일을 기대하며.


  너무 빛나지 말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감춰지고 고상한 체하기 좋아하는 광명이 으스댈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The Beatles - Let It Be


이전 17화 미소를 잃은 사람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