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리닌그라드 Feb 04. 2023

미소를 잃은 사람들

봄이 온다구요


  저 멀리서 봄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리 늦지 않은 오후, 거실로 들이치는 햇살이 덥다 싶게 따듯하다. 노을질 무렵 저녁바람은 적당히 서늘하게 때로는 훈훈하게 손등을 간지럽힌다.


  봄은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지 않는다.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게 환한 미소를 띠며 갖가지 예쁜 꽃들을 한 아름 가지고 돌아온다. 곱디고운 꽃신을 신고 돌아온다.



  나는 계절의 변화를 사랑한다. 온천지가 꿈틀대며 옷을 갈아입는 과도기를 사랑한다. 시간의 흐름 가운데 섭리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존재하기 위해 변화하는 격렬한 몸부림이 참으로 고귀하다. 격동 속에서 이 작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감탄 뿐이리라.


  그러나 봄의 감격을 사양하는 이들도 있다. 지나간 겨울에 기뻐하지 못하고, 다가올 겨울을 먼저 걱정하는 사람. 봄과 함께 다가올 파종이 귀찮은 사람. 뜨겁게 내리쬘 햇살이 싫은 사람. 사람은 언제나 감사보단 불평이 쉽고, 사랑보단 미움이 쉬우며, 용서보단 원망이 쉽다.




  어린 눈에는 시니컬한, 냉소적인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언제든지 촌철살인으로 비판을 하고, 듣기 좋은 칭찬보다는 듣기에 거북하더라도 지적해 주는 것이 오히려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듣기 거북한 것은 거북한 것이고, 촌철살인(寸鐵殺人)도 살인(殺人)이었다. 차가운 미소(冷笑)로는 얼음을 녹일 수 없고, 단 한송이의 꽃도 피워낼 수 없다.


  요즘 시대엔 칭찬보다 조소가 쉬워 보인다. 응원보단 지적이, 축하보단 폄훼가 더 친숙하다. 인터넷 댓글 창만 한번 열어봐도 서로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는 소위 지식인들이 득실득실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분명 봄날의 미소를 띠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를 할 줄 알고, 흠없이 밝은 미래를 꿈꿀 줄 알며, 이유 없이 응원할 줄 아는 사람들.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얼어붙은 냉소가 아직도 녹지 않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나온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 때문은 아닐까. 목덜미 사이로 들이치는 찬바람을 막으려 한껏 움츠렸던 어깨가 그대로 굳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물론 누군가는 비행기를 의심하여 낙하산을 만들고, 배를 의심하여 구명조끼를 만들어야 하겠다.

  다만 이제는 너무 춥게 살고 싶지 않다. 끝나지 않는 겨울 속을 거닐고 싶지 않다. 스스로 날 선 고드름을 얼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 냉기를 뻗치며 살고 싶지 않다. 냉소를 머금고 싶지 않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음에 기뻐하련다. 세상이 몸부림친 결과이기에. 그리고 피어난 꽃이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감사하고 경탄하며 인정하는 봄날의 미소를 되찾으련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가을에 도착하면 그제사 빈 곳간에 추운 겨울 다만 온기를 잃지 않을 만큼의 쌀가마니를 넣어두겠다.






  언제나 밝은 사람, 어찌 보면 "낙천적인 사람"은 분명히 세상을 바꾼다.

  우리는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믿으니 바다를 건너게 됐다.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으니 날게 됐다. 우주로 나갈 수 있다고 믿으니 나가게 됐다. 의심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낙심할지언정 포기하지 않았기에 세상은 바뀌었다. 얼음이 녹고 계절이 바뀌었다.


  작지만 고귀한 단 하나의 미소, 그 작은 미소들이 모여 온천지 얼음을 다 녹일 훈훈한 봄날의 바람을 불러올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Nat King Cole - Smile


이전 16화 너의 똥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