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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un 06. 2023

너의 똥통

난 요새 말이야



  오랜만에 안 보던 친구들을 만났다. 각자 어찌 사는지 대충은 들어 알고 있는 그저 그런 친구들. 얼마 만에 만난 것인지 신수가 훤한 게 보기가 참 좋더라. 하지만 이 장성한 사내놈들은 언제나 그랬듯, 덩치값 하지 못하고 금세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요새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드니, 내가 요새 배우는 게 얼마나 어렵느니, 통장의 잔고가 어떻고 주식이 어떻고. 어쩌면 도대체 만날 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로 불평을 해대는데 이렇게 열기가 대단한지.


  그 열띤 토론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다들 똥통에서 사느라 고생하는구나."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제일 처량하고, 자기가 제일 불쌍하다. 자기가 살아낸 오늘 하루가 가장 지치고,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힘들고, 자기 인생이 가장 어렵다고 투덜댈 것이다. 아무리 억만금의 돈을 손에 쥐고 있다 한들, 세상의 어떤 부자라 할지라도 자기를 가장 불쌍히 여길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인지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고 알리고 자랑한다. 자기가 빠져있는 똥통이 얼마나 더 크고 더러운지를 뽐낸다. 아마 그 내면은 강한 척하기에 지친 한 인간의 완곡히 청하는 도움의 외침이겠지. 아니다. 너보다 더 더러운 똥통에 내가 살고 있으니 너는 주름잡지 말라는 뜻일까? 모를 일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주인공인 토마시는 늘 가벼운 만남을 추구한다. 스쳐 지나가는 육체적 만남에 충분히 만족하며 그 이상의 깊은 관계성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테레자를 통해 변화한다. 테레자는 언제나 영혼의 세계를 앙망하는 사람이었다. 경박한 어머니와 천박한 술집의 손님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신의 운명과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그 너머의 세상으로 도약하기 위해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술집에서 서빙을 하던 테레자가 토마시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책을 읽고 있었고 그녀의 귀엔 베토벤의 음악이 들려왔다. 자신이 아는 유일한 베토벤의 음악이 들려올 때 술집에서 책을 읽는 남자를 마주친 테레자는 그 남자가 자기를 영혼의 세계로 이끌어 줄 사람이라 확신했다. 테레자는 우연을 운명이라 믿었고 토마시의 인생 가운데 뛰어든 것이다.

  토마시는 언제나 그랬든 가볍게 테레자를 만났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를 가까이했다. 그러나 테레자는 토마시를 따라 프라하까지 왔고, 따라왔다는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가져온 짐까지 역 안에 감춰둔다. 그때 토마시는 테레자를 받아들인다. 그녀의 짐을 찾아내 자기의 집으로 갖고 온다.



  토마시에게 테레자는 '바구니에 실려 강에 떠내려온 아기' 같은 불쌍한 존재였다. 토마시가 테레자에게 품었던 모든 감정은 연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연민하지 않았다.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존중했고 보듬었다.

  연민으로 시작된 감정은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 놨다. 토마시는 수많은 여자와 즐기던 가벼운 만남, 의사라는 직업, 나라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의무를 모두 져버리고 테레자를 위해 시골에서 트럭을 운전한다. 테레자는 토마시가 자신을 영혼의 세계로 인도해 주리라 생각했지만, 토마시가 테레자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소설의 끝자락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사과한다.

  "토마시, 당신의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원인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이 바로 나야."

  그리고 토마시는 대답한다.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






  테레자는 자신을 연민하거나 한탄하지 않았다. 토마시 또한 자신에게 뛰어든 테레자를 존중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음으로 이루어졌다.


  모두가 지친 삶에서 해줄 수 있는 위로는 아마 존중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존속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사실은, 똥통 속 지쳐있는 이들에게 다만 작은 위안이 된다.


  나는 너의 최악을 인정하고, 너는 나의 최악을 인정하는 것. 서로의 똥통을 존중해 주는 것. 나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로를 향해 머금어 보이는 미소가 그들의 하루를 작게나마 밝혀주는 등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Hey Jude - The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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