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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l 01. 2021

JAZZ 99 -5

재즈 나인티나인

5. 



  사색의 나무



  교차로의 모퉁이에 선 JAZZ 99의 한쪽 방향은 Y대학교를 둘러싼 도로와 마주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 방향은 언덕을 따라 오르는 젖줄(카페 세잔과 내 집이 자리 잡은 언덕 꼭대기까지 오르는 그 도로를 나는 젖줄이라 불렀다)의 반대편을 잠식한 빡빡한 숲을 마주하고 있었다. 숲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았지만 밀집한 나무들의 빡빡함은 웬만한 숲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문제의 숲은 철책에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나로서는 금단의 구역이었다. 그러나 철책을 따라 약 15분 정도를 걸어가다 보면 다른 도로가 나오고, 그 도로 한가운데에 사색의 나무가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사색의 나무는 일명 ‘클라라의 나무’라고도 불리는 나무였는데, 이 일대의 사람들과 Y대학 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나무였다. 우람하고도 독특한 생김새를 자랑하는 이 나무는 특히 완만한 M자 모양으로 뻗은 그 나무의 몸통 때문에 더욱 유명했다. 먼 옛날 이 곳에서 촬영을 했던 어떤 영화에 출연한 경력도 있다는 이 나무가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 이 나무는 4차선 도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그 도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원칙대로라면 이 사색의 나무는 베어졌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 나무를 베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번번이 사고가 터졌다. 기계를 쓰면 기계는 고장 났고 사람을 쓰면 사람은 죽어나갔다. 별 수 없이 그 나무는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고 그 주위는 인도에 사용하는 벽돌로 감싼 후 작은 돌의자를 놓아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사실 어지간한 노약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토록 좁은 도로를 건너면서 쉬어가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는 멀쩡한 도로를 둘로 갈라놓고 있었다. 왜 그 나무가 ‘사색의 나무’ 내지는 ‘클라라의 나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먼 옛날 그 곳에서 영화를 찍었을 때의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다고 했으나 그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나는 알지 못했다. 

이렇다 할 뚜렷한 동기도 없이, 나는 사색의 나무를 나의 낡은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JAZZ 99과는 달리, 사색의 나무는 처음부터 나를 매혹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장을 오가면서 사색의 나무와 심심찮게 마주치는 동안 나는 머리를 스치는 뜻밖의 착상과 조우했다. 사색의 나무를 찍은 사진을 내가 사는 원룸의 작은 소파 뒤에 붙여두면 어떨까.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타고날 때부터 미적 감각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내 작은 방의 소파 뒤에 몇 장의 사진을 붙여 둔 이유는 벽을 칙칙하게 물들인 누런 쥐오줌 자국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쥐와의 잠정적인 동거의 가능성은 내게 말할 수 없는 역겨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꾸며놓은 보금자리를 그대로 두고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쥐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도록 쥐덫을 가져다 두고, 벽에 붙은 쥐오줌 자국은 패션 잡지의 컬러 화보나 그럴싸한 풍경화 등으로 감춰서 조금이라도 비위를 덜 상하게 할 도리밖에 없었다. 

  일단 의식의 주요 거점을 점령한 그 발상은 좀처럼 철수할 줄을 몰랐다. 게다가 매일을 독서와 산책으로 소일하고 있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침내 나는 내 소박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고 어느 날 저녁, 황혼 무렵을 틈타 사색의 나무에게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노을 속에서 엠 자로 구부러진 사색의 나무는 꽤 분위기 있는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거리가 문제였다. 물론 내 낡은 수동 카메라는 줌인아웃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색의 나무를 조금이라도 확대하거나 축소하면 초점이 맞지 않거나 구도가 흐트러지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간간히 지나가는 차들이 완벽한 사진을 찍는 데 방해가 되었다. 남은 필름의 매수를 계산하며 조심스럽게 여러 장을 찍었지만,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각도가 불만스러웠던 나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이 늙고 우람하고 별난 나무를 극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라는 말조차 무색할 만큼 사진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그 순간에 나는 참으로 엉뚱한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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