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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Apr 28. 2022

31.  소설, 건축, 마부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전에도 한번은 얘기했던  같지만, 소설은 특히 장편소설 집필은 일종의 집짓기  건축이라고  만하다. 그렇게 따지면 시놉시스 작업은 설계도면에 해당하는 셈인데, 도면이 머릿속에  있어서 굳이 꺼내놓을 필요가 없다면 굳이 시놉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떤 형태로든(하다못해 간단한 메모 수준이라 해도) 시놉 작업은 필요하다. 설계도 없이 진행하는 건축을 상상할  있냐고 물으면 간단한 대답 아닌가.


일하는 도중에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다. 모니터를 열어놓고 술을 마시며 뭘 쓴다는 건 나한테는 있을 수 없다. (취해서 쓴 글이 다음날 깼을 때 정상적인 글이었던 경우도 거의 없다) 뭐 다른 작가님들의 작업 패턴은 모르겠고 그 나름의 작업 방식은 다 존중하겠지만 술 마시면서 쓴다고 하면 그건 존중이 안될 듯.


시대가 바뀌어서, 작가라고 해도 글로 수익을 못 내는 게 별로 이상하지 않게 여겨지는데 그게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 마치 마부가 된 느낌이랄까. 말과 마차가 사라지고 자동차가 달리는 거리에 선 늙은 마부 말이다. 평생을 마부로 일했던 사람으로부터 마부의 정체성을 빼앗을 수 있을까? 아무리 말과 마차가 사라졌다 할지라도.


소설과 건축이 본질적으로 같은 작업이라는 근거가 하나  있다. 쓰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 호화롭게 지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월세) 매겨져 텅텅  빌딩은 결국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대하소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생각해본다. 결국   돈이 없으면 누리힘든 특권이라는 점에서 (요즘 책값?!!)또한 자본주의의 쓸쓸한 이면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고 .

#소설과건축그리고마부의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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