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택한 도미토리, 그리고 몸과 마음을 데워준 뜨거운 국물.
이번 숙소는 도미토리 형태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사실 11월은 '로이 끄라통'과 '이펭 축제'가 있는 극성수기라, 가성비 좋은 1인실은 한 달 전부터 이미 씨가 마른 상태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곳이었지만, 지내보니 오히려 '신의 한 수'였다.
한국인 후기가 유독 많아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약했던 곳인데, 지내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동안 거쳐 간 수많은 해외 게스트하우스 중 청결함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요청하지 않아도 매일 새 수건으로 교체해 주시는 건 기본, 먼지 한 톨 없는 빳빳한 침대 시트로 잠자리를 정돈해 주셨다.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 쾌적함 덕분에 머무는 내내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여행자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건, 직원들의 태도였다.
2030 세대쯤 되어 보이는 그들은 비록 영어는 서툴렀지만, 마주칠 때마다 건네는 환한 미소와 발 빠른 대처로 나를 감동을 줬다. 교대 근무로 오가며 마주친 그녀들과 어느새 "See you tomorrow"라며 퇴근 인사를 나눌 만큼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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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짐을 풀고 편안한 밤을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익숙한 허기가 찾아왔다. 님만해민에 왔으니 '씨야 어묵 국수집'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부지런히 아점을 먹으러 5년 전의 추억을 찾아 길을 나섰다.
과거 여행 중 만난 언니가 데려가 준 맛집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많은 가게가 사라진 와중에도 다행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한국인도, 현지 손님도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뭉클함마저 느껴졌다.
다시 돌아온 치앙마이에서 제대로 된 첫 끼니. 나는 혼자였지만 테이블이 꽉 차도록 푸짐하게 주문했다. 주 메뉴는 바로 '뼈다귀탕'.
이곳의 뼈다귀탕은 한국의 감자탕과 비슷하지만, 국물이 맑고 개운해 '갈비탕' 맛에 더 가깝다. 자잘한 고기 대신 큼지막한 살코기가 뼈째 들어있는데, 야들야들한 살을 발라 국물에 적셔 먹으면...
크.....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여기에 곁들이기 좋은 노란 과자(튀김)와, 밥 한 공기, 그리고 번역기로 돌리니 뜬금없이 '병아리(?)'라고 나오는 시원한 음료까지 더하니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았다.
치앙마이도 11월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다. 딱 그런 날씨에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위장이 놀라면서도 환호하는 듯했다. 5년 전 여행에서 만난 언니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먹어서일까. 그날의 국물 맛은 세상 그 어떤 보양식보다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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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든든히 채우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곳의 실세인 고양이님이 나를 반겼다(사실 반기진 않았다). 녀석은 마치 이곳 사장인 양 새침하고, 터줏대감처럼 한량의 포스를 풍겼다.
숙소 이름과 같다는 녀석을 볼 때마다 힐링이 되어 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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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문 4인실은 운 좋게도 5일 중 3일은 나 혼자 전세 낸 듯 사용했다. 한국인이 많이 온다던 후기와 달리 딱 두 분 마주쳤는데, 그게 오히려 반전이었다.
평소 낯가림 심한 INFJ인 나지만, 타국에서 만난 동질감 때문일까.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의 지퍼가 활짝 열리더니, 어느새 별의별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숨겨진 파워 E(외향인)'가 되어 있었다. 낯선 공간이 주는 묘한 마법이었다.
헤어질 무렵, 직원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며 숙소를 나섰다. 기대를 낮추고 왔던 곳에서, 혼자여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정(情)'을 만났다.
뜨끈한 국물 한 그릇과 다정한 사람들.
당신의 여행에도 있나요.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마주한 온기 덕분에,
낯선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던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