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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Jan 30. 2024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  글쓰기

나에게 글쓰기는 직업은 아니지만 언제든 몰입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든든함을 준다. 지난 1년 4개월간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회의감과 부족한 자신감으로 다양한 감정의 오르내림을 겪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됐다. '비슷비슷한 쓸데없는 글을 올릴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의 피로감만 쌓이게 하는 게 아닐까? 내 글은 왜 이다지도 늘 비슷하고 형편없을까?' 이런 생각들을 한다.


요즘도 그런 생각들이 자주 찾아오지만 입구를 틀어막고 아예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 좋은 이야기만을 들으려 하고 아예 평가자체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맘에 드는 글이 써지는 희귀한 순간에 더 집중하고 누군가에게 작은 생각할 거리를 준 적도 있다는 사실에 힘을 내보려 한다.


다시 보기 힘들 만큼 내 글이 싫은 때도 그냥 새로운 글을 쓴다. 브런치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글을 올리지만 나의 글모음 창고에는 쓸데없는 글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글쓰기가 나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매일매일 하는 진짜 내 일이 되었다.


내가 계속하는 이유는 글을 쓰지 않았을 때의 삶보다 지금의 삶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세상에 관심이 많아졌고 더 오래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불편한 생각은 써 나가면서 저 뒤에 던져 버리고 좋은 것들로만 나를 채울 수 있게 됐다. 내 삶의 많은 시간들이 그렇게 채워져 가고 있다. 늘 공허함과 권태, 불안, 불쾌감에 시달렸는데 많이 사라졌다.


글을 쓰기 전에도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자가 치유를 하려 노력했지만 글을 써서 열린 공간에 올림으로써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누가 읽지 않아도 칭찬받지 못해도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하나를 덧붙임으로써 나의 형태가 더 두꺼워지는 느낌이 든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나 앞으로 다가올 노후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오히려 그 자유롭고 한가한 노년의 삶을 나의 일로 채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향기롭고 든든하게 채울 자신이 생겼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큰 것이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글을 써서 이름을 알리고 책을 내고 성공하겠다는 야망에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삶 속에 쉽고 편안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거 같다. 일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에 가깝다.


나에게 글쓰기는 마음을 치유하고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사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언제든 찾아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생긴 느낌이다.


이 세상에는 진짜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외로웠고 늘 공허했던 거 같다. 그 마음이 글을 쓰면서 많이 사라졌다. 현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글을 쓰면서 나에게 날 알려준다. 나를 더 잘 알게 되면서 그런 욕구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애초에 타인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으로 그 욕구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삶은 점점 나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결국엔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빈껍데기뿐인 자신을 마주 하게 된다.


삶의 방향을 잘 몰라서 사소한 것들을 인정받고 싶었고 공감이 필요했다. 나만의 삶을 찾아가면서 작은 걸음이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는 게 명확해졌다.


매일매일 쓰는 글들로 실체가 모호한 투명한 존재가 아니라 형태를 갖춘 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강해지고 단단해진 느낌이 든다. 이제야 자식들에게 버팀목으로 잘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벼운 상처만으로도 톡 터져버릴 듯한 얇은 막 속의 투명한 나는 억울함과 분노의 짐에 짓눌려 스스로 서 있기 조차 힘겨웠다. 내가 왜 그토록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흔들리는지 몰랐고 그런 나를 달래서 하루하루 일으켜 세우기 조차 버거웠다. 그런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고 직업을 갖고 일하는 것이 나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일만 했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품어줄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증명해주었으면 했고 세상에 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과의 관계보다 일에 몰두하고 물질적인 것들로 나를 채우려 했다. 심지어 자식들까지 나의 들러리로 세우려 했던거 같다. 아이의 성적, 아이의 체격과 외모, 친구관계 등등 모두 나의 성적표 같아서 그렇게 마음 졸였다. 다 내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바로 서있지 못해서 그렇게 자식들에게 의탁했다. 버팀목은커녕 아이들의 생기를 빨아먹는 존재였다.


아이들로 나를 증명해서는 안 된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른스러운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좋은 엄마는 스스로 잘 서있는 사람이다. 뭔가 잘못됐다는 위기감에 책을 읽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를 찾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나와 내 주변의 문제점들을 알아내고 투명한 나에게 맞는 색을 찾고 그 경계를 두껍게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나로 잘 서게 되자 아이들이 편안해지고 아이들의 문제가 사라지는 거 같다.


문제가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 경계가 생겨나자 제대로 정의되었다. 잘못됐다는 거를 알게 되었고 잘라버릴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글쓰기는 삶의 가장 든든한 도구가 되어주었다. 나를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게 도와주고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힘겹게 짊어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를 알려주었다. 나에게 좋은 것과  나다운 것만 남길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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