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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16. 2022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수다 떨기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소개하기

23년간 유아교육 과목 대부분을 강의했다. 시간 강사라는 직업이 내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없고 배정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새로운 과목을 맡아 강의할 때는 실제 강의하는 시간의 몇 배를 준비 시간으로 써야 했다. 특히 <유아 동작 지도>나 <유아 미술교육>, <유아 음악교육> 같은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과목은 정말 어려웠다. 준비하기에 어려운 이런 과목들 외에 내가 정말 신이 나고 좋아하면서 강의했던 과목으로 <유아 문학교육>이 있다.


그림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학생들과 실제 그림책을 읽어보고 토론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 모두가 재밌었다. 다 큰 학생들이었지만 그림책을 소개하고 작가에 대한 뒷이야기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 그 책에서 같이 생각해볼 주제 등에 대해서 같이 토론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는 늘 졸던 학생도 흥미롭게 눈을 반짝이며 참여했다.


항상 소개하는 책으로는 프랑스 그림책 작가인 토미 웅거러 의 <세 강도>와 <달 사람>, <제랄다와 거인>이 있다. 그림체가 그로테스크하고 어두워서 둘째 아이는 무섭다고 하면서도 늘 읽어달라고 가져오던 책들이었다. 내용도 우리가 유아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던 밝고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아니라 신선했다. 난 내용도 좋았지만 그림 자체가 너무 매력 있어서 좋아한다.

그림책의 그림들은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유아들을 매일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데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매일 훌륭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게 바로 그림책이다. 다양한 그림체와 화풍의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다. 흑백으로만 그려진 그림책, 우리나라 민화 풍으로 그려진 책, 콜라주, 판화, 펜화 요즘엔 정말 다양하고 훌륭한 그림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이들과 그림책의 내용으로 이야기 나눌 수도 있지만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보는 미술활동으로 연결 지을 수 있다.


그림책의 내용도 최근에는 굉장히 다양해졌다. 전래동화의 권선징악, 남녀 차별 문제, 현재의 시선으로 봤을 때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많아 전래동화를 보여줘도 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전래동화는 전래동화로서의 가치가 있다. 집단 무의식의 표출이며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내용들이 있어 보여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악인은 항상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행복하게 된다는 꽉 닫힌 권선징악적 내용은 아이들을 안심시켜 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황금과 여러 보석으로 가득 찬 궁전, 화려한 왕자와 공주가 나오는 내용도 인간의 안전의 욕구와 소속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어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이런 전래동화와 함께 현대의 다양한 가치를 보여주는 생활동화를 균형 있게 소개하면 된다. 예를 들면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이라는 책이 있다. 이 프레드릭이라는 이름의 쥐는 다른 쥐들이 여름 내내 겨울을 나기 위해 음식을 모으고 일할 때, 색과 이야기, 빛을 모은다. 겨울이 오고 음식도 다 동이 나고 다른 쥐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프레드릭이 무엇을 했을까? 개미와 베짱이 이솝우화에서는 여름 내내 기타만 치고 놀던 베짱이는 거지가 되어 개미의 신세를 지는 것으로 끝맺고 열심히 일해야 하고 놀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프레드릭은 다른 쥐들이 모은 곡식도 다 떨어지고 봄을 기다리는 춥고 배고픈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름 동안 모은 이야기로 시를 들려주고, 색과 빛을 보여주는 예술가였다. 힘든 상황에서 예술의 힘으로 위로해주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과 두 동화를 읽고 비슷한 부분과 다른 내용을 토론해 보고 사람이 사는 다양한 형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 그 내용을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해보고 기록해 보는 활동도 해볼 수 있다. 유아에게도 일차원적 교훈만이 아니라 인간세상의 다양한 면을 소개할 수 있다. 이 책은 콜라주로 만들어져 색다른 느낌을 갖고 있고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답기도 하다. 그림체에 대한 토론도 해보고 미술활동으로 해 볼 수도 있다. 그냥 오늘 “콜라주를 해볼 거야”가 아니라 “ 프레드릭의 그림처럼 표현하는 걸 콜라주라고 해. 이런 방법으로 우리도 그림을 만들어 볼까?”라고 소개할 때 훨씬 동기유발이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이 공간에서 소개하기 힘든 무궁무진한 활동들을 해볼 수 있다.


한 권 더 소개하자면 일본의 오토모 야스오의 <너구리와 도둑 쥐>가 있다. 내용을 보면 누군가 너구리 집의 물건들을 훔쳤다. 너구리 가족이 도둑을 잡고 보니 쥐 가족이었고 자신의 힘든 사정을 이야기하며 용서를 구한다. 이때 너구리 가족은 어떻게 했을까? 우리가 흔히 아이들 책이라고 하면 쥐들은 경찰에 잡혀가고 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아야 하고 도둑질은 나쁜 거라는 교훈적 내용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쥐 가족이 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도록 집 짓는 것을 도와주고 감자와 여러 곡식을 심고 기르는 법을 가르쳐준다. 쥐 가족은 그 고마움을 다음 해에 나온 곡식으로 되갚는다는 내용으로 끝맺는다.


이 책들은 유아들이 조금 더 다양한 시야를 갖도록 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보여준다. 문제 해결의 피상적 해결 방법이 아닌 조금 다른 방법을 보여준다.

아이들과 이런 그림책들을 보면 이야기할 거리들이 넘쳐난다. 언제 한글을 뗄 것 인지에 매달리는 일보다 훨씬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활동거리가 넘쳐난다. 정말 중요하지 않다. 한 일 이년 한글을 먼저 읽는 것보다 그림과 그 풍부한 내용에 집중해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미감을 키울 수 있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로 가장 훌륭한 것이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책을 경험한 아이들은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내가 유치원 교사로서 엄마로서의 경험상 예술적으로 훌륭한 책을 아이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소개하고 상호작용했을 때 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다 큰 대학생과 일반인들도 흥미를 갖고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글 읽기에만 관심을 보이고 잘 못 읽었다고 혼나고 교육적 교훈으로 가득 찬 책들만 경험했을 때 책을 싫어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그림책들을 내 아이들에게도 많이 읽어주기는 했다. 안타깝게 강의하러 다니고 강의 준비하느라 다양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두 명의 아이 모두 책을 좋아한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조금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내가 이야기하는 수다를 좀 더 많이 떨었더라면... 이 글을 읽는 아직 어린 유아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그런 시간을 많이 갖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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