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m Oct 27. 2024

260만원

 화장터로 향하는 아침 예약 이체로 260만원이 입금되었다. 선명하게 적힌 채란이의 이름은 또 다시 나를 무너지게 했다. 그제야 채란이가 남긴 마지막 편지의 첫 마디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언니 생일축하해! 입금된 거 확인했을까? 그 동안 언니한테 받은 건 많은데 내가 모아놓은 게 이거 밖에 없어서 염치없네….”     


 성인이 되고부터 채란이는 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돈도 그렇게 모아온 돈이었을 것이다. 힘들지 않냐 물으면 “언니도 그랬으면서 뭘” 하고 괜찮은 척 답했지만 어째서 인지 ‘우리 삶이 별 수 있어?’로 들리곤 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집 앞 편의점에서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생 때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뒤, 집에 들려 쪽잠을 자고 소위 돈이 되는 야간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번 용돈으로 동생에게 언니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없이 큰 기쁨이었다. 평소 먹고 싶어했던 군것질이나 필요했던 물건을 사주기도 하고, 번화가에 데리고 나가 연극이나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언니, 나 데리고 파워레인지 보여 준 거 기억나? 지금 생각하면 미쳤어! 그 먼 데를….” 경기도 화성시 시골 마을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잠실의 공연장에 데려간 것을 잊을만하면 이야기 꺼내던 동생이었다. “맞다! 크리스마스 때 진짜 웃겼어. 언니가 문구점 데려가서 뭐 가지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거 받았잖아.” 채란이가 초등학생이었던 내내 비장하게 준비해 온 크리스마스 선물의 비밀을 진작 알아채고 있었을 줄이야. 산타도 부모도 아닌 언니가 준비한 선물이라는 걸 알고도 모르는 척했을 그 속이 오죽했을까.     


 나는 채란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크길 바랬다. 아빠의 사업 부도, 부모의 이혼과 재혼 그 과정에서의 잡음과 잔흔 모두 언니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가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260만원, 260만원…. 내 바람과 달리 모든 걸 알고도 모르는 척 자랐을 동생의 생일선물은 너무나 크고 무겁다. 그리고 돈 주제에, 숱하게 벌어본 이까짓 돈이 참 슬프다.

이전 02화 슬픔과 그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