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이를 먼저 떠나보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 처음 마주한 건 거대한 슬픔과 그리움이었다. 슬픔은 눈물의 형태로 나타나 쉴 새 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그리움은 보이지도 들리지 않는 무형(無形)의 존재로 날 집어삼켰다. 그리움 끝에 잠이 들면 어김없이 채란이가 꿈에 나타났다. 모든 게 꿈일 거라 부정하며 깨어나려 했던 현실에서 도망친 나는 꿈을 현실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특유의 장난스럽고도 뚱한 표정의 채란이와 마주 앉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가지 말라고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하게 허락된 시간은 ‘꿈’ 그곳에서만이었다.
깨어나면 채란이는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큰 혼란이었다. ‘전화를 해볼까?’ 싶다가도 패턴을 풀 수 없는 채란이의 핸드폰이 내 서랍에 있다는 사실에 선뜻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또한 부정이었다. ‘안 받으면 어떡하지?’ 이기적인 나는 두려움에 휩싸일 나를 걱정했다.
채란이와 비교하면 나는 늘 이기적이었다. 그 아이조차 나를 그렇게 여기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스물다섯이 되던 해까지도 늘 이타심으로 충만했던 채란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난 이기적인 언니가 된다. 채란이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아빠와 연락이 닿고 난 뒤 8년 만에 만난 아빠는 눈물과 원망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너처럼 좀 더 강하게, 자기만 생각하게 그렇게 동생에게 해보지 그랬니?”
채란이를 마지막으로 본 건 8월 말이었다. 친구들이 제안한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을 다녀오기 전 본가와도 같은 우리집에 며칠 머물겠다 하였다. 그 때도 채란이는 유일하게 투정을 부려도 되는 상대인 나에게 익숙한 푸념을 뱉어냈다. “하, 나는 왜 언니처럼 안 될까?” 싫은 소리, 마음에 없는 소리, 짐이 될 소리는 일절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늘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채란이는 하고 싶은 말이나 드는 생각을 제 때 내뱉는 나를 대단하게 여겨 주었다. 글쎄, 나는 언제부터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8살 어린 하나뿐인 동생을 지키며 살아야 했던 숱한 시간들이 나를 그런 언니로 만들었다곤 너에게 말 못하지 않겠니.
끝이 보이지 않는 슬픔과 그리움의 터널을 하염없이 걷다 보니 자연히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되고, 옳다고 믿었던 견고한 생각들의 많은 부분들이 달리 보인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내 모든 까닭에 채란이 네가 있었다고, 널 그렇게 흔들고 붙잡아두었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럼 오늘 난 너에게 전화를 걸고 네가 전화를 받는 그런 날이 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