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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Jan 10. 2019

1부_풍자가 가리키는 방향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1부와 2부 중심으로)

축소된 이야기


  영화가 개봉했다. 걸리버 여행기. 익숙한 그림이 머릿속을 스쳤다.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를 꽁꽁 싸맨 채 두려움에 떠는 소인국 사람들. 걸리버 여행기를 직접 읽기 전까지 내가 가진 인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 속의 걸리버. 소인국과 거인국이 나오는 신비한 세계. 돌이켜보면 소인국과 거인국에 대한 기억이 뚜렷할 뿐 걸리버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 있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정말로 걸리버 여행기를 다 읽은 것인가.

  

  걸리버 여행기는 이야기 속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책을 모두 읽은 사람은 드문 독특한 책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을 통해 이야기를 접했거나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로 그려진 어느 걸리버를 우리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설책을 직접 펼쳐본 뒤에야 독자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소설을 모두 읽은 뒤에는 그런 의문이 스쳤다.


그렇다면 왜 걸리버 여행기는 축소된 것일까.


  작가인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를 출판했던 당시 걸리버는 가공의 인물인 ‘심프슨’을 내세워 출판업자와 거래했다. 출판업자의 손에 들어간 그의 이야기는 적나라한 풍자와 비판으로 인해 작가의 허락도 거치지 않은 채 일부가 삭제되고 변경되었다.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온전히 나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가 온전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735년 정치적 위험을 감수한 조지 포크너라는 출판업자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후 세계로 퍼져나간 걸리버 여행기는 풍자 소설의 대표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들은 온전한 이야기가 아닌 3부까지의 여행기를 동화로 펴내는 경우가 많았다. 4부의 이야기가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를 들어 삭제한 채 책을 발간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완역본과 동화책이 함께 전해진 나라에서도 완역본이 아닌 동화책이 인기를 끌어 퍼져나갔다. 온전한 작가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졌지만 사람들에게 주로 읽히는 것은 이야기를 축소한 동화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걸리버 여행기는 ‘축소된’ 장면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풍자를 위한 선택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라는 인물을 내세워 그의 여행기를 담아냈다. 항해를 떠나 낯선 나라에 도착한 그가 그 나라에 적응하고 살아가다 본래의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여행기. 작가는 독자에게 오직 ‘걸리버의 시선’을 전한다. 그의 여행기를 목격하는 독자는 그가 전하고 설명하고 싶은 영역 그 이상을 전해 듣지 못한다. 그는 새로운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김새, 문화, 역사를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늘어놓다가도 일순간 독자의 재미를 위한다며 그만 전하겠다는 대담한 방식을 취한다.



그의 감정과 그가 처한 상황에 의해
독자는 ‘선택적인 시선’만을  전해 듣는 것이다.



  독자는 소인국과 거인국, 공중에 떠있는 라퓨타와 같은 세계를 주관적인 걸리버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관적’인 그의 시선으로 독자는 되려 그 세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걸리버가 전하는 환상과 같은 세계를 통해 독자는 지금의 현실과 비추어 깨닫게 되는 것이다.

환상적 세계는 현실의 모순을 보다 냉정히 들여다보기 위한 작가의 장치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독자가 걸리버에게
온전히 이입한 채 읽어나가는 소설일까?


  기행문의 형식을 취하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화자’인 등장인물에 이입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표현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에게 ‘온전히 이입’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다. 걸리버의 시선으로 환상 속 세계를 철저히 따라가면서도 작가는 그 위에 군림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작가는 독자에게 의문을 남긴다. 걸리버는 ‘당신이 온전히 믿어야 할 화자인가’ 그의 시선은 정말로 옳은 것인가. 결론에 도달한 독자는 그제야 작가가 화자인 걸리버조차 ‘풍자’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  소인국 여행기


걸리버 여행기 무비 스틸컷


  웅성거리는 사람들. 움직이지 않는 팔과 다리. 걸리버는 눈을 떴다. 낯선 감촉. 온몸은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그는 자신을 묶어버린 이들을 찾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리고 그는 15센티 정도의 소인국 사람들과 마주한다.


 

  소인국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온 거대한 손님에게 호기심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 거인이 어떤 이유로 이곳에 도착한 것인지, 그의 목적이 소인국을 멸망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그에게 화살을 날리기도 하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기도 했다. 어떤 방식을 취해도 그들은 거인의 진위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대신 거인을 왕에게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왕궁에 도착한 걸리버는 여전히 소인국 사람들에게 ‘거인’이었으므로 포박된 채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그들 안에 존재하는 공포는 걸리버의 모습에 안심하며 점차 그의 처분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때때로 그들은 나를 굶겨 죽이기로 결정하기도 했고
때로는 나의 몸에 독화살을 쏘아서 죽게 하도록 의견 일치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그렇게 큰 송장이 썩는 과정에서 그 나라에서 전염병이 들지 않을까
걱정도 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결국 걸리버를 살려두기로 한다.

  걸리버는 서서히 소인국의 문화에 적응해나간다. 그는 그들에게 탄원서를 보내며 자유를 요구한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가 생활할 수 있는 반경은 한계가 있었고 여전히 그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함께였다.



  그는 황제의 신임을 얻은 뒤에야 그들에게 서약서를 건네받는다. 자유를 위한 의무. 의무라는 말끝에는 그를 향한 그들의 ‘공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거인’인 걸리버가 그들을 배신할 수 없도록 자유 끝에는 경계와 대가가 따를 뿐이었다.


첫째, 거인은 나의 옥새로 날인한 허가 없이는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다.
중략.
여섯째, 거인은 우리 군대와 연합하여 블레푸스쿠 섬에 있는 우리의 적과 싸워야 하며 우리를 침공하려고 준비 중인 적 함대를 격퇴하는데 힘쓴다.
일곱째, 거인은 시간 여유가 있으면 우리가 궁궐이나 기타 주요 건물을 건축할 때 큰 돌을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협조한다.


  

  그들은 그에게 자유를 줄 것이라는 달콤한 제안을 건네면서도 결론적으로 그들의 이력을 취했다. 걸리버는 결국 권력자들에 의해 선택적 자유에 묶인 것이다.


그들이 걸리버에게 내건 조항은 점차 모두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처음 이들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걸리버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권력가들이 당쟁을 벌이는 동안 이웃나라에서 이를 노리고 침범을 할지도 모르니 걸리버에게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당쟁은 그저 높은 굽을 신을 것인가, 낮은 굽을 신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들은 황제의 굽과 자신들의 굽을 가늠 하며 소모전을 벌인 것이다. 그들은 그런 소모전을 벌이지 않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당쟁을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어가기 위해 걸리버를 이용했다. 그들은 권력의 정점인 황제에게 시선을 맞추며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의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적국이 침범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웠으면서도 그들은 논쟁을 멈추는 선택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걸리버는 뿐만 아니라 소인국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의 존재 여부가 곧 전쟁의 승패를 가르게 된 것이다. 승리에 취한 황제는 걸리버에게 이웃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켜달라고 부탁한다. 걸리버는 이를 거절하며 처음으로 황제의 빈축을 산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시점에서 그는 권력가들에게 또 다른 ‘두려움’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돋아난 두려움은 곧 적을 쌓는 계기가 된다. 그들의 요구에 따라 궁전에 도착한 걸리버는 급한 마음에 오줌으로 불을 꺼버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왕비 역시 그에게 앙심을 품는다. 그는 그들이 내건 조항에 따라 행동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항에 의해 서서히 위협을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걸리버를 충분히 이용한 소인국은 위협적인 그를 없애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에게 그는 위협적인 요소일 뿐 가치를 잃은 것이다.


  결국 걸리버는 이웃나라의 소인국에 도움을 받아 배를 만들어 그곳을 빠져나온다. 거기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소인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곳에도 권력가가 있었고 전쟁이 있었으며 권력의 정점에 선 그들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현실’이었다. 그저 그들의 크기가 15센티미터가 된 것뿐인 것이다.






2거인국 여행기


  거인국 여행기가 소인국 여행기 이후에 배치된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소인국에서 압도적인 힘과 크기를 자랑했던 걸리버는 거인국에 도착해 자신이 소인처럼 여겨진 뒤에야 그들의 시선을 이해한다.



  그는 가까이서 바라본 거인들의 ‘확대된’ 모습을 혐오스러워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소인국 사람들이 그를 처음 봤을 때 느꼈을 감정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는 소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구경거리가 되어 왕국에 도착해 살아간다. 그 삶 속에서 걸리버는 자신이 멀리 떨어져서 바라봐야만 거인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은 인간이기에 그의 감각은 예민하게 반응하며 실제보다 그것이 확대되어 다가오는 것이었다.      


향수 냄새를 맡을 때면 나는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역겨웠다. 이것과 관련해서 할 말은 내가 릴리 푸트에서 겪은 일이다. 어느 무더운 날에 내가 상당히 많은 운동을 했는데, 나의 친한 친구가 나에게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내가 영구의 다른 남성들보다 더 냄새가 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 작은 인간들의 후각은 내가 현재 이 거인들을 대할 때의 후각처럼 나에 대해서 예민했던 게다.
2부 거인국 여행기 중     

  거인국에서 그는 소인국에서 생활할 때보다 더 큰 고난을 겪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박을 맞고 기절하거나 개구리에게 공격을 당한다. 소인국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그에게 공포를 느껴 그를 없애는 군상이 드러났지만 거인국에서는 오히려 그와 비슷한 사람을 얻어 번식시키려는 생각에 도달한다. 거인국에서의 그는 말하자면 그들의 장난감인 것이다. 사실상 거인국의 사람들 역시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거대한 몸집을 지녔을 뿐이다.       



-> 3부와 4부를 중점으로 다룬 2부가 곧 연재될 예정입니다.



-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박용수 옮김, 문예출판사

- 당신이 4부를 완독 하기를 바라며


이미지 출처 : 걸리버 여행기 영화 포토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75475




+ 고전 장편 소설 브런치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https://brunch.co.kr/@kamori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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