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난히 솔직하지 못한 아이였다. 주변에 눈치를 살피는 것이 당연했던 아이. 두 눈을 굴리며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카운팅을 마주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여자답지 못하게 행동하다는 이유로 나는 폭발을 무기력하게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폭발하는 소리와 압박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마주하면 돌처럼 굳어버려서 눈치를 보기 바빴다. 솔직해질수록 내게 돌아오는 건 더 큰 폭발이었기에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감정을 숨기거나 참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이 바로 글쓰기였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내 마음속 내밀한 글. 글을 쓸 때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글을 쓰고 나서야 나는 나에게만 온전히 돌아갔던 방향의 반대편을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에세이는 어떤 글쓰기 중에서도 내가 가장 드러날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 시작은 머뭇거려도 지나간 현실을 온전히 마주하게 만드는 기록. 완성하고 나면 어떤 글보다 후련한 기분이 드는 글쓰기. 브런치를 연재하며 새로운 기쁨을 느끼게 해 준 글쓰기였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고 공감과 위로를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글이었으니까.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작가 지망생이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본업을 하기 위해 하는 것뿐이라고. 당장에 먹고살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어서 나는 두 일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결국 본업이 부업에 밀리는 현실이 와버렸지만.
글과 멀어진 채 시간이 쌓여갔고 나는 부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글쓰기가 주는 기쁨도 내가 나를 생각하는 시간도 모두 멀어졌다. 체력이 바닥나고 나니 앉아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핑계가 핑계를 만들었다. 브런치에 알람이 들어와도 무심해지는 시간이 잦아졌다. 어차피 더 쓰지 못할 거야.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29살, 내가 멀다고 느꼈던 나이에 도달했다. 여전히 나는 지망생이며 수중에 완성된 작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나에게 잊었던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작가가 되지 못할 때 찾아오는 순간.
고급 독자가 될 것인지, 글을 쓰는 작가로 살 것인지.
친구들과 창작의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불현듯 같은 문장을 되새겼다. 이대로 나는 고급 독자가 되지 않을까. 애써 글을 다시 잡아도 창작이 아닌 배설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스스로 채찍질을 하며 나는 자주 친구들에게 고급 독자가 될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지쳐버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나는 회사를 버리고 글쓰기로 돌아왔다. 1년이 지난 나의 이야기. 글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생각해둔 것들을 단숨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색하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친구가 불현듯 제안한 요청이 다시 나를 노트북 앞으로 이끌었다.
저장만 해두었던 과거의 내 글을 꺼내보고 지금의 나를 비추고. 그저 친구가 정해준 마감 날짜를 지키기 위한 글쓰기라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잊었던 행복이 다시 밀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래서 매번 글을 쓰는 거였지.
친구를 통해 내 글을 읽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자.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내보내자.
이 책의 에세이는 모두 나의 내밀한 어느 날의 기록이었다. 누군가에게 현실일지 모르는 과거의 내 모습. 아프고 쓰려서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았는데.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덜 자란 내가 지친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급 독자가 되겠다는 결심이 무너진 그날. 나는 다시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